신길1동 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차중환)는 2012년 11월부터 주민자치 프로그램으로 수화교실을 개설해 운영해오고 있다. 신길1동은 1만190세대에 2만1000여 명이 거주하는데, 이중 65세 이상이 2300여 명에 달한다. 노인인구 비율이 주민의 10%를 차지하지만 어르신을 위한 주민자치 프로그램은 턱없이 부족하다.
신길(新吉)이란 ‘마을에 새로운 좋은 일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이런 동명처럼 신길1동 어르신들은 수화를 배우며 여생을 새롭게 즐기고 있다. 이에 지난 4월 17일 신길1동 주민센터를 찾아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수화교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알아봤다.
눈높이 수화교실은 2012년 11월에 개설돼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으로써 매주 토요일 10시부터 12시까지 어르신 20명이 참여하고 있다. 지금껏 수화교실이 잘 운영된 데에는 곽기정 강사의 남다른 애정과 헌신이 있었다. 곽 강사는 2007년 7월 신길1동 주민센터에서 장애인 행정도우미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가 신길1동 주민이자 동 행정도우미여서 그 누구보다 소외된 주민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의 권유로 홀몸어르신,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수화교실에 참여하고 있다. 또 수화교실은 신길1동 어르신뿐만 아니라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어르신을 대상으로 확대 운영해 신길4동 어르신들도 수강하고 있다. 더욱이 영등포구 소식지에 수강생 모집 광고를 게재해 이를 접한 할아버지 한 명이 직접 참여했다.
어르신들의 사랑방
“행정도우미로 근무하다 보니 농아인, 기초생활수급자들을 많이 만날 수밖에 없다. 특히 농아인들이 주민센터에서 민원을 보며 불편을 겪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수화를 배웠다. 2009년 3월, 영등포구청이 매년 운영하는 ‘사랑의 수화교실’에서 초급, 중급, 고급반을 수료했고, 그 후 동 주민센터를 찾는 농아인의 민원 안내를 맡았다.” 곽기정 강사의 말이다.
그가 동 주민센터에서 수화를 사용하자 청소년을 위한 수화교실을 개설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주민자치위원회는 2012년 4월 19일부터 5월 2일까지 수강생을 모집했고, 5월 12일 청소년 토요 프로그램 ‘눈높이 수화교실’을 개강했다.
당시 주민자치위원회는 주5일제 수업이 시행되면서 청소년을 위한 주말 프로그램으로 수화를 택했고, 청소년들의 경험을 넓히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자 3개월 과정으로 2회를 진행했다. 초·중학생 10여 명이 5월부터 10월까지 동 주민센터 2층 동아리방에서 글자쓰기(지화), 숫자, 단어 등 기본적인 수화를 익혔다. 더불어 수화로 문장, 노래를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청소년 수화교실은 6개월 과정으로 마무리됐고. 2012년 11월부터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수화교실로 전환됐다. 그렇게 해서 2012년 11월 20일 어르신을 대상으로 눈높이 수화교실을 다시 열었다. 당시 어르신들이 ‘사랑방’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주민자치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이다.
손동작, 치매 예방에 도움
손아름 주무관은 “2012년에 어르신 프로그램과 주말 프로그램을 개설해야 했다”며 “수화를 가르칠 수 있는 강사가 동에 있어 수화교실을 개설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등포구에서 소액의 강사료를 지원 받아 수강료가 무료다”며 “곽 강사는 봉사를 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어르신들에게 수화를 가르쳐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신길1동에는 어르신 프로그램으로 수화교실과 실버댄스가 개설돼 있다. 실버댄스는 평균 60세로 연령대가 낮지만, 수화교실은 평균 80세로 최고령자가 90세고, 최연소자가 68세다. 이처럼 수화교실 수강생들의 연령대가 높다보니 곽 강사는 청각장애인과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강도 높은 학습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르신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어르신들이 웃고 떠들면서 수화를 배울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수강생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 홀몸어르신이어서 더욱 건강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어르신들이 수화교실을 정말 좋아하고 재밌어 한다. 1년 반쯤 수화를 배워 일반인보다 어르신들이 수화 단어를 더 많이 알고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 본인은 강의할 때마다 어르신들에게 건강을 지키며 오래 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수화교실에 오는 것 자체가 운동이 되고 손뼉치고 웃고 수화를 따라하는 것이 운동이다.”
곽 강사는 매주 수화 단어를 서너 개씩 어르신들에게 알려준다. 그가 어르신들에게 수화를 적극 추천한 이유는 손동작이 어느 정도 치매예방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매번 수화교실을 빠지지 않는 어르신들이라도 수화 단어를 익히기는 쉽지 않다. 돌아서면 잃어버린다는 말처럼 어르신들이 수화 단어를 암기하기는 부담스러웠다.
그런 어르신들에게 곽 강사는 “전혀 부담 없이 수화교실로 와서 재밌게 놀고 가시면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수화교실은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높아 출석률이 좋고 수강인원이 가득 차 더 이상 수강생을 받을 수 없을 정도다. 더욱이 현재 어르신들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합니다’ ‘좋아합니다’ ‘알아요’ ‘몰라요’ 등 기본적인 수화 단어를 익혔다.
토요일 10시에 모이세요!
“토요일 10시가 되면 어르신들이 하나둘 모여 지각하는 수강생들을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르신들은 일상적이면서 사소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그분들은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고 너무 좋아한다. 어르신들이 거의 다 모이면 출석을 부르고, 체조를 하며 실컷 웃고, 지난주에 배운 수화를 복습한다. 중간 중간에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새로운 수화 단어를 가르쳐준다.” 곽 강사는 수화교실의 풍경을 설명했다.
어르신들은 곽 강사가 가르쳐준 수화를 쉽게 기억할 수 없지만 열심히 따라한다. 그에 따르면 어르신들이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단어를 암기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곽 강사는 한 어르신과 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수화로 먼저 인사를 해서 놀라웠다고 회상했다.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다 보니 연로하신 홀몸어르신을 많이 만날 수밖에 없다. 80세가 넘으신 어르신들은 주민자치 프로그램 등 좋은 정보를 알려주지 않으면 전혀 모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누군가 어르신들에게 알려줘야 참여가 가능하다. 앞으로 주민자치위원회가 고령화 사회에 맞춰 80세 이상 어르신을 위한 주민자치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적극 홍보하면 어떨까 싶다.” 곽기정 강사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