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구로구 주민자치 리더 워크숍이 4월 24일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남이섬 노래박물관 매직홀에서 각 동 주민자치위원장 및 간사, 동장 등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중앙대 특임교수)은 구로구 주민자치 실질화 전략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펼쳤다.
특강에 앞서 장예선 구로구 주민자치위원협의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바쁘신 중에도 구로구와 구로구 주민, 구로구 주민자치를 위하는 마음으로 참석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오늘 워크숍은 올바른 주민자치의 방향성을 찾아 진정한 구로구 주민자치 실현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주민자치라는 화두를 통해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 소통과 화합을 이루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후 본격적인 특강이 시작되었다. 전 회장의 특강 내용을 정리하여 소개한다.
주민자치에도 전략 필요해
7년 전 쯤에도 구로구 주민자치위원님들을 위해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이렇게 오랜만에 뵙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오늘 우리나라 주민자치가 왜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지 말씀 드리도록 하겠다. 안 되는 이유를 알아야 잘 되는 방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역유술(仁亦有術)은 사람이 어질게 사는 데도 전략이 있다는 뜻이다. 주민자치도 마찬가지다. 주민자치 저절로 되지 않는다. 전략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구로구 주민자치 실질화를 위한 전략이 있는가? 아쉽게도 없다. 오늘 그 전략을 만들어 보자.
주민자치위원, 제 역할 하고 있는가
월간 <주민자치>를 매달 발행하고 있다. 4월호 특집기사는 대학에 개설한 주민자치학 관련 내용이다. 작년에 서울대, 중앙대, 대구대, 대진대 등에서 대학 및 대학원생들에게 주민자치학 강의를 개설해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중앙회에서는 매 주마다 주민자치 연구 세미나를 열고 있다. 매달 월간 <주민자치>에 핵심 내용을 담아 게재한다. 4월호에는 대만의 주민자치를 살펴보는 세미나 기사가 실렸다. 대만은 우리나라 동 보다 작은 촌 단위의 주민자치회장을 주민들이 직선한다. 회장은 무보수명예직이지만 대신 한 달에 200만 원 정도씩 판공비가 제공된다. 그리고 주민자치 업무를 보려면 간사가 필요한데, 공무원 1명을 회장 밑에 배치해 보조하게 해준다. 주민자치가 잘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성년식의 현대적 부활을 다룬 세미나도 있었다. 주민자치의 미래 자원이 청소년에게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가게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성년식이다. 주민자치위원님들이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성년식이다. 그러나 주민자치위원님들은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안타깝다.
최근 세미나에서는 우리나라 주민참여예산제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선점을 찾아보았다. 지금의 주민참여예산제는 행정 주도로 운영되고 있다. 진정한 주민참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동 예산 중 10%만이라도 주민자치(위원)회에 지원해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게끔 해야 그것이 진정한 주민참여예산제 아닌가?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한 게 주민참여예산제다. 이렇듯 매주 주민자치 연구 세미나를 열고 있는데 주민자치위원님들은 참석하지 않으신다. 이 역시 안타깝다.
내친 김에 잔소리 좀 더하겠다. 여러분들 주민자치 회의 어떻게 하시고 계신가? 아마 6시쯤 모여 주민자치위원장, 동장, 구 의회 의원이 인사말 한마디씩 한 후 정작 본 회의에서는 모든 안건을 임원진에게 일괄 이임하고 저녁 먹으러 가버린다. 이런 회의는 백 날 해봐도 주민자치에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구로구에서는 주민자치 회의록을 누가 만드시고 계신가? 대부분 동 주무관이 작성할 것이다. 주민자치위원장님이나 간사님들이 일 안하고 계신다는 말이다. 이런 현실이니 주민들은 주민자치위원들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수밖에. 주민들이 주민자치(위원)회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하셔야 한다. 그리고 주민들이 주민과 마을을 위해 애쓰는 주민자치위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도록 주민자치하셔야 한다.
현대화-도시화-아파트화가 만든 압축갈등
서구가 300년, 일본이 100년 걸려 만든 현대화를 한국은 30년 만에 일궈냈다. 서구는 촘촘하게 성장했지만 한국은 엉성하게 성장해 선착순 경쟁에서 이겼을 뿐이다. 이러한 선착순문화, 능력지상주의가 주는 폐해로 잘 사는 것만 생각하고 인간답게 사는 것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일사불란하게 발전된 한국 사회는 벌거벗은 경쟁에 치중했고 영혼 없는 엘리트를 양성했으며, 이로 인해 위험사회를 넘어 잔인사회로 진입하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서울 등 대도시로 떠나는 이촌향도가 발생했고 도시는 거대화되고 밀집화되며 아파트화되었다. 당연히 공동체사회로서의 미숙성이라는 결말에 마주치게 된다. 특히 아파트는 개인의 주거공간으로는 훌륭하지만 사회적 공간으로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웃사촌이 없어졌고 끈끈한 공동체 의식도 소멸되어 버렸다.
품위 있는 사회, 주민자치가 만들 수 있어
사회자본은 대인관계와 공유된 정체성, 규범, 이해, 가치와 더불어 신뢰, 협력,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 집단에 효과적인 기능을 한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적 자본 지수는 세계 162개국 중 107위로 매우 낮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가의 신뢰도인 ‘살기 좋은 나라’는 29위로 높은 편이다.그러나 공적인 신뢰도는 정치인 신뢰도(114위), 사법시스템 신뢰도(155위), 정부신뢰도(111위) 모두 현저하게 낮다. 사적인 신뢰도인 사회적 관계망(162위), 서로에 대한 존중(160위), 친구 만들 기회(153위)도 매우 낮다. 건강한 사회자본 만들기가 강력하게 요청되는 상황이다.
사회자본 만들기는 곧 품위 있는 주민과 마을,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품위 있는 사회란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이며, 제도에 의지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사회를 뜻한다. 사회자본 만들기는 주민자치사업/행사/강좌의 형태로 진행될 수 있다. 전입주민환영회, 성년식인 관례나 계례처럼 주민자치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면 충분히 가능하다.
단순한 봉사활동? 주민자치 아니다
주민자치의 본질은 잘 먹고 잘 살고 잘 노는 것이다. 단 이걸 혼자 하면 개인자치, 관료가 하면 관료행정, 시민단체가 하면 시민운동이 된다. 주민 모두가 함께 해야 비로소 주민자치가 완성된다. 이 중 잘 노는 것이 중요한데 일하면서도 잘 놀고 마을을 위해서 잘 놀고 주민들을 위해 잘 노는 것이 필요하다. 재미있게 잘 놀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봉사하는 것이 주민자치가 아니다. 재미있고 하기 쉽고 돈 적게 드는 주민자치 사업을 기획하고 찾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살고 잘 노는 일 중 국가나 단체장, 시민단체가 해줄 수 없는 일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마을차원의 문제, 생활차원의 문제, 주민차원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이게 바로 주민자치다.
주민자치는 이인삼각...발맞추는 규칙 만들 듯 주민이 주민자치회 회칙 만들어야
주민자치는 흡사 2인 삼각 경기와 같다. 미리 말을 맞추고 발을 맞춰 나가야 한다. 알아서 자체적으로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주민자치회도 마찬가지다. 주민들이 함께 모여 회칙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재미있는 퀴즈 하나 내겠다. 10개의 사과가 있다. 10명이 공평하게 나눠 먹으면 되지만 2개를 먹은 사람이 있으면 어떡할까? 1개가 부족해 누군가 손해 보게 만들어야 한다. 사과를 먹은 9명은 안 먹은 사람에게 미안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기회에 못 먹은 사람에게 9명이 사과 한 개씩 선물하면 된다. 서로 감사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미덕이 주민자치의 출발인 것이다.
주민자치 훼방 놓는 장애물 많아
지방자치는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로 구성된다. 단체자치는 30년 동안 나름대로의 발전을 이뤘다. 권한을 부여 받아 의미 있는 발전을 해 온 것이다. 주민자치? 20년 되었지만 여전히 어떠한 분권도 받지 못하고 제자리걸음 중이다. 주민자치회법도 없고 권한도 없고 예산도 없고 인력도 없다. 결국 반쪽짜리 지방자치인 것이다. 성공할 수 없는 여건인 것이다.
현실이 이러한데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주민자치를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지방의회 의원들도 주민자치(위원)회장의 권한이 커지는 것을 경계한다. 그래서 활동과 지원으로 제한하고 조례로 예산을 묶어 버리는 것이다. 행정 공무원들도 주민자치가 잘 되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일만 많아지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정은 사업을 독점하고 권한을 독점해 버린다. 상황이 이러하니 주민자치위원은 능력의 한계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OECD 중 읍면동장 직선 않는 국가는 우리뿐...읍면동 민주화되어야
우리나라 읍면동은 식민지화되어있다. 읍면동이 먼저 민주화되어야 한다. OECD 국가 중 읍면동장을 직선하지 않는 국가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일본 정내회, 스위스 게마인데 같은 주민자치 조직은 모두 읍면동장을 직선한다. 심지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직선한다. 우리나라만 행정이 꽂는 구조다. 읍면동장을 직선하면 별도의 주민자치회가 필요 없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주민이 주민자치회장을 직선하고 회칙을 직접 만들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표준조례로 주민자치 왜곡한 행정안전부
문재인 정부의 행정안전부는 주민자치회를 주민 없는 자치회로 왜곡시켰다.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제27조 주민자치회 설치에 관해 ‘풀뿌리자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해 읍면동에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를 둘 수 있다’는 조항을 행정안전부는 주민자치회 표준조례에서는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이란 문구를 삭제한 것이다.
주민자치회에 주민이 없어진 것이다. 대신 위원으로 채워 넣었다. 주민자치회의 회칙 제정권이 박탈되었고 대신 시군구 조례에 묶여 관치화된 것이다. 회장 선출권도 박탈되고 공개추첨으로 무력화시켰다. 재정권 역시 빼앗아 시군구 예산에 의지하게끔 예속화시켜 버렸다. 결국 지금의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아닌 소수의 위원만으로 구성된 심각하게 기형적인 구조다.
같은 법 제29조에 의하면 주민자치위원마저도 단체장이 위촉하게 되어 있다. 주민 없는 자치회에서는 위원이 전부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들어 놓고 주민자치해라? 말도 안 된다. 주민자치위원은 주민자치 성패를 좌우하는 사람인데 이 위원을 행정에서 위촉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시민단체, 주민자치에 숟가락 얹어 권력형으로 덩치 키워
시민단체는 주민자치를 등에 없고 권력형 시민단체로 덩치만 키웠다. 주민자치회 표준조례 제21조 ‘시장(또는 군수·구청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관련 법인 또는 단체 등으로 하여금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을 지원하게 할 수 있다’를 통해 시군구가 주민자치회의 설치 및 운영을 중간지원조직이라는 명분으로 시민단체에 위탁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고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시작된 시민단체에 대한 주민자치 위탁이 시민운동가와 권력형 시민단체의 규모만 키운 꼴이 되었다. 행정과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시민단체, 관변단체를 중간지원조직이라는 미명 아래 주민자치회를 지배하고 주민자치회의 정당한 권리를 말살시켰다.
전격적으로 폐지된 서울시 마을공동체사업이 대표적 증거다.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마을자치지원센터-동자치지원관으로 이어지는 중간지원조직을 내세워 주민자치 경험이 전무한 시민단체에게 정책부터 행정까지 포괄적으로 위탁한 것은 자치단체의 무책임이자 지방의회의 무지를 드러내는 극치다. 주민 동의 없이 모든 것을 민간에 위탁해 버리는 작태는 조선시대에 이미 실패했던 주민자치인 수령향약, 양반향약과 다를 게 없다.
주민자치센터 운영, 주민자치위원회가 적극 나서야
조례에 따르면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 기능만 가지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가 결정할 수 있는 일체의 권한이 없다. 그러나 주민자치센터 설치 및 운영은 주민자치위원회가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민자치센터 사용료와 수강료는 제대로 책정되고 있을까? 전혀 그렇게 되고 있지 못하다. 조례에 의하면 수강료의 경우 읍면동장과 협의하여 주민자치위원회가 정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사용료와 수강료를 면밀하게 통계내고 분석해 주민자치위원회가 합당하고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여러분들이 꼭 하셔야 되는 일이다. 그런데 주민자치위원들마저도 자신의 일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주민자치위원은 능력과 의지가 있어야 한다. 부족한 능력은 지원하고 도움을 주어 채울 수 있지만 의지가 없거나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도울 길이 없다. 여기 계신 주민자치위원님들만이라도 조례 공부를 열심히 해 주민자치센터 심의만이라도 제대로 해 주시기 바란다.
주민자치, 주민이 이웃되고 마을 일이 나의 일 되는 것
주민자치가 잘 되려면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주민이 주민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한다. 그래야 주민자치가 제대로 돌아간다. 그런데 주민들을 자세히 보고 오래 볼 시간이나 기회가 부족하다. 그래서 더욱 더 이웃사촌 만들기를 해야 한다. 이웃을 위한 미덕이 결국 마을의 공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행정의 일을 잘 도와주는 것을 보고 주민자치 잘한다고 하면 안 된다.
주민자치는 주민이 마을의 생활관계를 주민과 마을을 위해 주민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분권과 자치 아래 주민이 구역을 나의 마을로 승인하는 자발성, 주민이 주민을 나의 이웃으로 승인하는 자주성, 주민이 마을의 일을 나의 일로 승인하는 자율성이 주민자치의 필요충분조건이 되어야 한다.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역량을 모아 주민과 마을이 모두 잘 되게 하는 것이 주민자치위원장님들의 역할이자 임무인 것을 잊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사진=이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