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 중구의회에서 8월 28일 오후 2시부터 의원 역량강화 교육이 열렸다. 주민자치 및 지방분권과 제도, 관련 법제 사항 등에 대한 강의를 통해 의정 활동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정책연구를 독려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교육에서 전상직 한국주민자치학회장(중앙대 특임교수)은 ‘주민자치의 낙처(落處)는 어디인가’라는 제목으로 특별강연을 펼쳤다. 전 회장의 특강을 현장감을 살려 있는 그대로 지상중계한다.
25년째 주민자치에 몰두, 여전히 까다롭고 어려워
주민자치를 무엇이라 딱히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25년째 주민자치하고 있지만 매우 어렵다. 노자의 <도덕경>을 성균관대학교 교수님에게 배울 때 상당히 내용이 어려웠다. 그때 교수님이 “자네는 아직 열심히 살 40대라 알아듣기 힘들 것이다. 시간이 지난 자네 눈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의 눈으로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주민자치도 마찬가지다. 쉽지 않은 주민자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설명해 드리겠다.
그래서 특강 제목을 ‘주민자치의 낙처는 어디인가’로 정했다. ‘낙처’는 불교 용어다. 참선할 때 쓰는 용어인데 결국 주민자치를 왜하고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이를 설명하는 제목을 ‘주민자치 낙처’라고 붙였다. 다소 철학적인 제목이다.
주민자치 정책 파악하는 문해력 높여야
1999년부터 2023년까지 대한민국 정부가 주민자치를 해오는 동안 저 역시 주민자치에 지속적으로 관여해 왔다. 최근에는 전국 각 대학에 주민자치 과정을 개설했다. 그만큼 주민자치는 학문적으로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주민자치회 법을 다루는 국회의원, 조례를 다루는 시도 및 시군구의회 의원들은 주민자치를 배우는 과정이 없다. 공무원도 주민자치를 배우는 과정이 없다. 주민자치위원도 주민자치 잘 공부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가 저의 고민이다.
그래서 한국주민자치학회는 매주 목요일마다 오후 3시가 되면 4시간 가까이 주민자치 연구 세미나를 열어 심층적인 토론을 진행한다.
최근에는 정광호 교수라는 분이 문해력을 주제로 들고 왔다. 글자는 읽으나 문장을 못 읽은 경우가 많다. 더 중요한 것은 문해다. 정책 문해력은 정책을 제대로 읽고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이다. 정책 문해력를 높이는 것이 대한민국 선진화, 민주화의 관건이다.
주민자치 문해력에 대한 상관관계도 살펴본 바 있다. 주민자치에 대한 정책적 문해력을 키울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심도 깊게 논의했다. 주민자치를 제대로 하려면 주민자치 정책부터 법안, 조례 등에 이르기까지 분석해 판단할 수 있는 문해력이 필요하다.
주민자치회장 직선해야
대만의 주민자치를 살펴보는 주민자치 연구 세미나도 열었다.
대만은 우리나라 인구 1,000명 정도 촌 단위의 주민자치회장을 주민들이 직선한다. 우리나라에서 주민자치회장 직선하면 어떤 문제가 나올까? 먼저 동장의 입장부터 곤란해 질 것이다. 동장의 위상이 직선 주민자치회장 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주민자치회장을 직선하지 않는다. 일본, 영국, 스위스, 심지어 공산국가인 중국도 주민자치회장을 직선한다.
대만의 주민자치를 살펴보니 주민 직선을 통해 선출된 주민자치회장인 만큼 자부심을 갖고 주민들의 존경을 받는다. 대만 주민자치회장은 무보수명예직이지만 한 달에 200만 원 정도 판공비를 받는다. 그리고 주민자치 업무를 제대로 보게 하기 위해 전담 공무원 1명을 회장 밑에 배치해 준다. 행정 경험이 많은 유능한 공무원과 함께 일하니 주민자치가 잘 안 될 수가 없다. 모든 민원을 주민자치회장에게 전달한다. 밤낮으로 연락이 온다고 한다. 주민의견을 반영하고 설득하기위해 노력한다. 힘든 면도 있지만 주민을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매우 뿌듯하고 보람된다고 한다. 대만에서는 지방자치, 주민자치가 알뜰하게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성년식, 마을 어른으로서 주민자치회의 역할
성년식도 얼마 전 주민자치 연구 세미나에서 다뤘다. 성년식은 결국 세대 간의 이야기다. 어른들이 직접 나서 스무살 되는 청년들에게 잘 살도록 충고하며 성인식을 깎듯이 해주는 것이다. 살펴보니 아프리카가 제일 잘한다.
어른이 되어 스스로 잘 살 수 있도록 마을 어른들이 청년들에게 해주었던 것이 성년식이다. 전 세계 성년식의 사례를 살펴보고 우리나라 전통 성년식인 관례와 계례도 살펴봤다. 주민자치회가 마을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것이 성년식이다. 그런데 제일 반대하는 게 구청장이다. 정치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참으로 안타깝다.
주민자치 잘하기 위한 전략과 방법 찾아야
김영삼 정부 때부터 한국병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의사마다 처방하는 것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병이 나기 전에 고치는 것은 종교다. 그렇다면 한국병은 어떻게 고쳐야 하나? 의사가 의학적 처방을 하는 것처럼 저는 우리 사회를 위해 철학적인 진단인 철방 내려 봤다. 더불어 정책적인 진단을 하는 책방도 시작했다.
이를 위해 한국주민자치학회와 한국주민자치중앙회를 설립해 활동하고 월간 <주민자치>, 월간 <공공정책>을 발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주민자치 대상을 시행하고 주민자치학과 및 강의를 개설했다.
이렇게 해도 주민자치 현실은 참으로 암담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인역유술(仁亦有術)이라는 말이 다. 사람이 어질게 사는데도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주민자치 역시 잘 되는 나름의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22대 국회 발의된 주민자치회법안, 여전히 헛발질
최근에 제22대 국회에 박정 의원과 이해식 의원이 주민자치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진정성이 전혀 없는 법안이다. 지난 국회 때 잘못 발의한 주민자치회법안들은 헛발질 하여 다 폐기되었다. 이렇게 실패한 법안을, 독소조항이 가득 담긴 기존 법안을 재단해 급조한 법안이 이번에도 발의되었다. 의견서를 만들어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냉철하게 비판했다. 기회가 되는대로 여러분께 보내드리도록 하겠다.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주민자치, 과연 어떻게 해야 하나? 오늘 이 시간이 현재의 주민자치가 무엇이 잘못되어 있고, 왜 잘되지 못하는지, 어떻게 하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지 격 없이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주민자치 선진국, 주민 스스로 자치회 설치하고 운영해
세계적으로 주민자치 잘하는 나라는 주민 스스로 직접 주민자치회를 설립하고 운영한다.
일본의 주민자치는 주민들끼리 한다. 행정은 도울 건 돕지만 간섭 하지 않는다. 스위스의 주민자치는 게마인데나 꼬뮌이 있는데, 안건이 나오면 주민투료를 실시한다. 지방의회는 주민들에게 물을 수 있는 것을 묻고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결정만 하지 않는다. 정부나 행정은 충분히 지원하되 간섭하거나 통제하지 않는 것이다.
의회는 주민에게 많은 것을 묻지만 주민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하지 않는다. 직접민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집행만 하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실질적으로 단체장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집행한다. 지방의회는 사실상 힘이 없다. 의회에 힘을 실리기 위해서는 그 힘이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우리 역사에도 제대로 된 주민자치 전통 있어
1517년 중종 때 향약을 실시하면서 우리나라 주민자치가 시작되었다. 중국에서는 여씨향약이라고 하여 여씨 집성촌에서 주민들끼리 수평적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조선에 들어와서는 양반중심의 향약으로 변질되어 주민들을 통제하고 수탈하는 목적으로 변질되었다. 율곡이 양반향약을 강력하게 반대한 이유다. 양반향약이 백성들을 더욱 곤란하게 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545년 명종 1년에는 향약은 스스로 행하고자 한다면 좋지만 조정이 입법하여 시행하는 것은 어렵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수평적인 향약이 아니라면 주민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1895년에 들어 유길준 선생이 향회조규를 만들면서 우리 주민자치는 만개한다. 향회조규는 오늘날의 주민자치회 법이다. 1895년 대한제국에서 법률로 반상차별을 철폐하고 주민이 회원이 되어 대표자를 선거하는 등 조선 향약 328년의 경험이 주민자치의 지혜로 되살아 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선 주민자치의 결정판인 향회다.
실제 향회조규에는 대향회, 중향회, 소향회로 조직을 구성해 놓았는데 소향회는 리에 설치되어 매 호 대표가 모여 회장 선거를 하고 중향회는 면에 두어 소향회에서 회장1명, 대의원 2명 등 3명이 모여 면회를 구성한다. 여기서도 또 다시 3명이 모여 군회인 대향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주민자치가 작동할 수 있는 조직 구성인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향회는 폐지되고 만다. 총독부가 통치체계를 도-군-면-리까지 수직적으로 완성해 주민자치를 지배해 버렸다. 지금의 읍면동 및 통리 역시 일제강점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표준조례로 주민자치 왜곡한 행정안전부
주민자치센터? 주민과 자치가 없이 센터만 있다. 공무원의 의지로, 공무원의 사무로, 공무원이 운영한다. 주민은 배제되어 있다. 대전 중구의 주민자치센터 조례를 살펴보자. 중구청장이 주민자치센터를 설치하고 동장이 운영하게 한다. 주민자치위원회는 프로그램 운영을 심의하고 수강료 결정 및 징수 등만 맡겼다. 그러나 이에 대한 주민자치위원회 활동에 대한 실질적인 기록이 없다. 비단 중구만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똑같다.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센터가 방치된 상태다.
주민자치회라고 다를까?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제27조 주민자치회 설치에 관해 ‘풀뿌리자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해 읍면동에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를 둘 수 있다’는 조항을 행정안전부는 주민자치회 표준조례에서는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이란 문구를 삭제해 버렸다.
주민자치회에 주민이 없어진 것이다. 대신 위원으로 채워 넣었다. 주민자치회의 회칙 제정권이 박탈되었고 대신 시군구 조례에 묶여 관치화된 것이다. 회장 선출권도 박탈되고 공개추첨으로 무력화시켰다. 재정권 역시 빼앗아 시군구 예산에 의지하게끔 예속화시켜 버렸다. 결국 지금의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아닌 소수의 위원만으로 구성된 심각하게 기형적인 구조다.
행안부 주민자치회 표준조례 제21조 ‘시장(또는 군수·구청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관련 법인 또는 단체 등으로 하여금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을 지원하게 할 수 있다’를 통해 시군구가 주민자치회의 설치 및 운영을 중간지원조직이라는 명분으로 시민단체에 위탁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 것이다.
시민단체, 주민자치 등에 업고 권력형 단체로 덩치 키워
문재인 정부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으로부터 시작된 시민단체에 대한 주민자치 위탁이 시민운동가와 권력형 시민단체의 규모만 키운 꼴이 되었다. 행정과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시민단체, 관변단체를 중간지원조직이라는 미명 아래 주민자치회를 지배하고 주민자치회의 정당한 권리를 말살시켰다.
전격적으로 폐지된 서울시 마을공동체사업이 대표적 증거다.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마을자치지원센터-동자치지원관으로 이어지는 중간지원조직을 내세워 주민자치 경험이 전무한 시민단체에게 정책부터 행정까지 포괄적으로 위탁한 것은 자치단체의 무책임이자 지방의회의 무지를 드러내는 극치다. 주민 동의 없이 모든 것을 민간에 위탁해 버리는 작태는 조선시대에 이미 실패했던 주민자치인 수령향약, 양반향약과 다를 게 없다.
주민자치위원회가 읍면동장 밑으로 갔다면 주민자치회는 읍면동장과 수평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지 못하다. 주민자치위원회와 별 차이가 없이 인사권, 재정권, 예산권을 행정에게 모두 빼앗긴 것이 지금의 주민자치회다.
주민들이 더 잘할 수 있는 사업을 주민자치 지원관을 파견해 맡겨 버렸다. 시군구 의회도 주민들도 위탁 받은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주민이 할 수 있는 일까지 시민단체에 위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민자치회를 시민단체의 식민지화하기 위해서다. 대전 중구에서는 의원님들이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제대로 된 주민자치회를 만들어 주셔야 한다. 저 역시 돕겠다.
읍면동 및 통리는 민주주의 사각지대...읍면동 협치, 통리 자치하는 이중구조 만들어야
의회는 간접민주제다. 그러나 읍면동에는 간접도 직접도 민주제가 없다. 읍면동장 선거를 하지 않는다. 읍면동 의회도 없다. 통리도 마찬가지다. 결국 읍면동과 통리는 민주주의 사각지대다. 읍면동장의 독재체제다.
읍면동 자치는 인구 규모나 면적 범위에서 불가능하다. 가능한 것은 협치다. 그렇다면 통리 단위 자치가 가능하다. 이중구조로 만드는 게 이론적으로 맞다. 한국 읍면동은 대다수가 자치단체에 가까운 큰 규모다. 인구도 무보수 명예직의 비상근 주민자치회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며, 면적에서도 생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주민자치회를 통리 계층에 설치하는 것이 이론이나 현실적으로 가장 적절하고 기존의 행정 보조기능을 주민자치회로 전환하면 주민자치 실질화를 앞당길 수 있다. 이중구조 주민자치회는 지역이나 주민을 대표하는 자치기능, 자치단체와 협력하는 협치기능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자치기능을 통리에 두고, 협치기능을 읍면동에 두는 이중구조로 주민자치회 설계가 충분히 가능하다.
혼자 하면 개인자치, 모두 함께 해야 주민자치
결국 주민자치는 주민들이 모두 함께 잘 먹고 잘 놀고 잘 사는 행위다. 이를 혼자하면 개인자치고 공무원이 하면 관료행정이며 시민단체가 하면 시민운동이다. 다 함께 해야 주민자치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 개인자치에는 성공한 분들이시다. 먹고 사는데 걱정 없는 분들 아니신가? 그러나 주민들이 모두 함께 잘 먹고 잘 놀고 잘 사는 일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한국의 주민자치는 삶은 개구리와 같다. 개구리를 찬물에 넣었다가 아주 조금씩 온도를 높이면 개구리가 처음에는 모르다가 결국 삶아지게 된다. 이런 걸 두고 ‘삶은 개구리 현상’이라고 한다. 현재의 주민자치가 이런 현실이다.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민주제 중 가장 핵심은 주민에 의해 주민들이 직접민주제를 실천하는 것이다. 결국 주민자치다. 주민자치야 말로 주민들의 바람직한 하극상이자 유쾌한 반란이다.
주민자치위원과 주민자치사업 성공할 수 있도록 맞아 떨어져야
주민자치위원과 주민자치사업이 맞지 않으면 결국 실패하고 만다. 현재 주민자치위원과 주민자치사업은 너무 동떨어져 있다. 의원님들이 바로 잡아 주셔야 한다. 위원에게 사업을 맞추는 방법이 있고 사업에 위원을 맞추는 방법도 있다. 안전, 복지, 환경 문제는 주민에게 동기도 형성할 수 있고 역량도 충분히 잠재되어 있다.
그런데 주민자치사업을 하려면 인력이 있어야 하는데 위원들의 시간적 여유가 너무 없다. 사업국이 없기 때문이다. 만들어 줘야 한다. 주민들과 소통하는 회원국도 필요하다. 중구에서 먼저 고려해서 만들어 보시면 좋겠다.
전입주민 환영회가 주민자치사업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각 분야에 역량 있는 주민들을 모아 사업하면서 주민자치 역량이 저절로 커질 수 있다. 그러나 제도가 지원되지 않고 있다. 종로구청장에게 전입주민 환영회를 제안해 실시하기로 했다. 역시 중구에서도 참고하셨으면 좋겠다.
연대성-공동선-보조성-인격성이 주민자치의 원리
주민자치회의 원리는 기본적으로 인간 존엄성에 기초를 두고 공동선-연대성-보조성으로 구성된다. 이를 토대로 분권과 자치 아래 주민이 구역을 마을로 승인하는 자발성, 주민이 주민을 나의 이웃으로 승인하는 자주성, 주민이 마을일을 나의 일로 승인하는 자율성이 필요충분조건이 되어야 한다.
인간과 사회라는 두 축을 놓고 보면 인간의 사회화, 사회의 인간화를 이루는 일련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관건은 이러한 주민자치 원리를 실현하기 위한 주민자치 정책은 반드시 자치와 분권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주도나 특정단체 주도로 조직된 단체가 주민자치회에서 충실한 기능을 수행하도록 제도화하면 주민자치는 주민역량에다 단체역량을 결집하여 지역을 공동체화 할 수 있다. 주민자치회가 지역과 주민을 대표하는 것을 국가나 지자체가 조직한 단체가 침식하고 훼손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주민자치는 행정적 속성을 가지면서도 비행정조직이요, 정치적인 속성을 가지면서도 비정치조직이요, 재정을 필요로 하면서도 비영리조직이요, 고유의 목적을 가지면서도 지역보편조직이기 때문이다.
주민자치는 주민이 마을의 생활관계를 주민과 마을을 위해 주민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분권과 자치 아래 주민이 구역을 나의 마을로 승인하는 자발성, 주민이 주민을 나의 이웃으로 승인하는 자주성, 주민이 마을의 일을 나의 일로 승인하는 자율성이 주민자치의 필요충분조건이 되어야 한다.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역량을 모아 주민과 마을이 모두 잘 되게 하는 것이 주민자치의 역할이자 임무다. 의원님들의 많은 지원과 협조가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의 주민자치 비교
한국과 일본의 주민자치를 비교하면 한국은 망국 전까지 조선향약이 살아 있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들어 일제가 조선향약을 식민지 지배 방법으로 쓰거나 아예 중앙집권 체제를 확고히 하며 말살시킨 부분이 많다. 이후 군정-대한민국 건국-한국전쟁-혁명-산업화-민주화를 거쳐 1999년에 공식적으로 우리 정부가 주민자치를 비록 미비하기는 하지만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은 패전 직후 바로 주민자치조직인 정내회를 공식화해 자주화-민주화-자치화 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주민자치도 혁신의 시기를 마주하고 있다. 참여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향약이 단절된 상태에서 관치화가 촘촘히 이뤄졌고 도시화와 아파트화가 이뤄지면서 조선 향약이 발붙일 자리가 없이 사회 내파 현상이 심해졌다. 단절된 지역사회 문제를 마주했고 일본은 혁신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 두 사례를 적용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살펴야 한다.
시군구 주민자치 조례 냉철히 평가할 터
시군구 주민자치회 조례가 누락시키고 있는 것, 잘 반영하고 있는 것, 반대로 왜곡하고 있는 것, 그리고 과잉시키고 있는 것을 주민자치평가원을 통해 면밀히 평가할 예정이다. 시군구 조례는 물론 시범실시 조례까지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하여 의원님들께도 공유해 드리겠다.
주민자치회, 비정부조직/비영리조직/비사적조직으로 출발해야
국가는 법령과 예산으로 움직이고 시장은 영업과 이익으로, 개인은 능력과 조건에 의해 움직인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국가나 시장이나 개인이 해줄 수 없는 꼭 필요한 영역이 있다. 그 영역을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주민자치의 본질이다.
따라서 주민자치회는 비정부조직/비영리조직/비사적조직으로 출발해야 한다. 이렇게 NGO/NPO/NIO로서 경험을 충분히 쌓아 도착점 주민자치회에 다다르게 되면 국가가 할 수 없는 영역, 시장이 할 수 없는 영역, 개인이 할 수 없는 영역을 주민자치가 해낼 수 있다. 선진국일수록 이 영역이 크다. 이 영역의 크기에 따라 선진국의 위치가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품위 있는 사회 품위 있는 국가가 만들어 진다.
품위 있는 주민자치위원장-위원 만들어 주기를
주민자치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이 만나서 주민들끼리 연대하고 소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로 소통하는 방법이 있고 배우는 걸로, 노는 걸로 소통하는 방법이 있다. 배우는 것으로 소통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 주민자치센터이고 주민자치센터 강좌다. 그러나 지금은 프로그램이 일관화 되어 있고 노래교실, 댄스교실 같은 강좌의 강사와 수강생이 담합해 새로운 주민들을 배제하고 있다. 주민 간 소통이 전혀 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주민 화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년들과 함께 하고 새로 전입한 주민들을 환영하는 진정한 주민자치 행사가 필요하다.
주민자치는 품위 있게 해야 한다. 주민자치위원장과 위원을 품위 있게 만들어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자치 할 수 있는 의욕과 동기, 시간과 여유가 있는 주민을 주민자치위원장과 위원으로 선출해야 한다. 역량은 교육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지만 동기와 여유는 도와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원님들이 주민자치회 조례 만드실 때 꼭 참고해 주셔야 한다.
주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상생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중구의회에서 만들어 주시기 바란다. 착안대국(着眼大局)하되 착수소국(着手小局)하시어 현실적으로 마을에서 주민들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 함께 고민해 주시기 바란다. 도울 일이 있다면 저 역시 힘껏 돕겠다.
전상직 회장의 특강이 마무리되고 중구의회 의원들과의 질의 응답시간이 이어졌다.
Q. 중구 인구가 23만 명이 안 되는데 노령인구가 증가하는 실정이다. 17개 동에 주민자치위원의 수를 보면 많게는 25~6명에서 적게는 14~1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가 제일 많은 동 역시 위원 수가 14명이다. 그럼에도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참여하시는데,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들어서면서 자생단체가 감소하는 추세다. 지금 국회에 주민자치회 법안이 마련되면 구 조례가 유명무실해 진다. 국회에 법안이 상정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A. 주민자치위원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위원들이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진정한 주민자치를 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그럴 동기와 역량, 여유가 있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의원님들이 살펴 주시기 바란다.
베이비부머가 전부 은퇴한다. 직장에서 지역사회로 복귀한다. 이 분들에게 일을 찾아 주는 것이 주민자치다. 주민자치회는 위원만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전체로 편제되는 것이 필요하다. 주민자치센터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살리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47개 동을 주민자치회 시범실시했다. 그 이후 85개가 되었다. 적정한 수준이었다. 이를 통한 결과와 경험을 분석해 주민자치회 법을 만들면 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시범실시만 1,500개 넘게 했다. 시범실시하자는 게 아니라 민주당 주민자치회를 만들자는 속셈이다.
주민자치회법이 만들어 지면 기존 주민자치위원회, 주민자치회가 없어지고 새로 만들어 지는 주민자치회가 시행되어야 한다. 주민자치회 법안을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11개가 상정되어 모두 폐기되고 이번 22대 국회에는 2개 법안이 올라 와 있는데 급조되고 독소조항이 넘치는 문제가 많은 법안이다.
중구에서는 시범실시 하지 말고 다른 곳의 시범실시 사례를 타산지석 삼아 배우는 게 중요하다. 똑 같이 따라갈 필요 없다. 만약 하겠다면 정치적 욕심 때문일 것이다. 주민자치 실질화를 위해 시범실시를 더 할 필요 없다. 앞으로 국회에서 몇 개 더 주민자치회 법안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가늠이 되실 것이다.
Q. 현재 중구에서는 주민자치위원회를 운영 중인데, 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할 방안이 있는지? 관변단체와 자생단체들이 많은데 주민자치 조직과의 충돌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17개 동에 주민자치센터가 있는데, 그 기능과 역할을 아는 주민들이 소수인데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 마지막으로 동장 추천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A. 주민자치위원 중 주민자치회 조례를 읽어 본 분들이 몇 명 없을 것이다. 조례에 명기된 주민자치위원회가 해야 할 일을 본인의 일로 생각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1999년부터 조례에 주민자치위원의 임무가 정해져 있지만 이것을 제대로 시행한 주민자치위원회는 없다. 그러나 제주도는 상당히 잘 운영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에 전문적인 업무를 맡을 위원들을 뽑아야 한다. 25명의 위원 중 8~9명 정도는 전문인력을 영입해야 하는 것이다. 주민자치위원회를 사업 조직으로 만들려면 인력을 그에 맞게 구성해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원래 회원제도다. 관변단체 관변회원, 자생단체 자생회원, 일반주민 주민회원 등으로 구성하면 되는데, 차별화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가장 큰 오해가 봉사활동이 주민자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봉사활동은 여러 주민자치 활동 중 일부일 뿐이다. 커다란 주민자치회 그림을 그리고 그 안에서 각 단체가 할 일을 만들면 되는데 이게 안 되어 있는 현실이다. 중구에서 이런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실 수 있으리라 본다.
동장 추천제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만약 한다면 확실히 연구해 지금까지 사례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평가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없다면 결국 주민을 호도하는 행위다. 이런 면에서 동장 추천제는 미완이고 효과가 크게 없다. 구청장이 정책으로 할 수 있는 정도이지 동장 줄 세우기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본다.
Q. 영국, 일본, 스위스 등이 주민자치 선진국으로 알고 있다. 늦게 시작하는 대신 중구만의 주민자치회가 잘 운영될 수 있는 로드맵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A. 중구 자체를 직접민주제로 운영하면 주민자치가 저절로 된다. 그러나 지자체는 간접민주제로 운영하면서 직접민주제는 어떻게 채택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영국이나 프랑스, 스위스는 수평적인 체계다. 그 자체로 주민자치다. 우리나라는 시군구를 간접민주제로 운영하는 대신 직접민주제의 대안으로 주민자치를 하는데 읍면동에 주민자치회를 설치해 버렸다. 규모나 면적상 읍면동은 직접민주제가 어렵다. 통리에 주민자치회를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민자치회를 선거 조직으로 보는 정치권도 문제다. 정당법이나 선거법 등을 통해 주민자치회를 탈정치화시켜야 한다. 따라서 읍면동장이 주민자치위원을 위촉하지 말고 주민이 뽑아야 한다. 선거를 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지만 그 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연구를 해야 한다. 추첨제는 대안이 아니다.
일본은 정부가 간섭 안 하고 주민자치회가 회비로 운영된다. 1945년부터 그렇게 운영되어 왔다. 우리나라는 현재 주민세와 주민자치회 사이에 명확한 인과 관계가 없다. 그렇다면 주민세에 항목을 만들어 징수해 주민자치회 재원으로 활용하게 하면 된다. 며칠 전 한국지방자치학회 학술대회에서 주민자치회 재정에 대해 토론했는데, 주민자치회장에게는 인건비 대신 활동비를 줘야하고, 간사는 활동비와 인건비를 다 지급하고, 위탁사업 역시 활동비와 인건비를 다 지원해 주고, 대신 자치사업은 주민자치회 자체 재원으로 하게끔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런 사안에 대한 연구를 용역에 맡기지 마시고 의원님들이 지금부터 6개월 정도 매주 2~3시간씩 공부하신다면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싶다. 의원님들이 충분히 디자인 하실 수 있고 그렇다면 주민들의 지지도 받으실 수 있으리라 본다.
사진=이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