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의 시작, 스스로의 주인이 본인 자신임을 알아 가는 것”
전상직 한국주민자치학회장, 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 특별강연 펼쳐
주민자치의 가치와 본질을 전하는 특별강연이 가톨릭대학교 행정대학원 주최로 열려 주목을 모았다. 9월 4일 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에서는 ‘주민자치, 바람직한 하극상’이라는 주제로 전상직 한국주민자치학회장(중앙대 특임교수)이 가톨릭대 학생들과 교수 등을 대상으로 특강을 펼쳤다. 전상직 학회장의 특강 중 핵심내용을 추려 보았다.
2006년 한국주민자치학회의 전신인 한국자치학회를 창립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자치인데, 자치라는 키워드는 참으로 다양한 학문적 영역과 맞닿아있다. 20년 넘게 자치라는 키워드로 공부하는 중이다. 오늘 강의 제목에 들어간 ‘낙처(落處)는 불교에서 쓰는 철학적 용어다. 주민자치라는 것이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떨어지는가를 고찰하기 위해 ’주민자치의 낙처‘라고 특강 제목을 지어봤다. 오늘 자치라는 화두로 의미 있는 시간을 나눠 보도록 하자.
뿌림과 거둠의 왜곡, 주민자치로 해소할 수 있어
선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 선한 일을 하여도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내 안에 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 악한 일을 하여도 벌을 받지 않는 것은 아직도 내 안에 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편파적인 성향 때문에 자신이 뿌린 대로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인과를 왜곡하지 않는 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국가나 시장이나 사회가 뿌림과 거둠을 왜곡시키는 경우도 많다. 자치는 내가 사는 마을, 함께 사는 주민들만이라도 이 왜곡을 해소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편이다.
읍면동 및 통리 민주화되어야
시군구의 경우 시군구청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간접민주제로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또한, 시군구에는 주민소환, 주민발안, 주민투표 등의 직접민주제도 있다. 그러나 읍면동장은 시군구의 장이 공무원 중에서 임명한다. 주민이 직접 선거하지 않는다. 읍면동장을 선거하지 않는 선진국은 거의 없다. 심지어 공산국가인 중국도 선거한다. 우리나라가 읍면동장을 선거하지 않는 것은 일제의 식민지 잔재다.
시군구는 어느 정도 민주화되어 있지만 읍면동과 통리는 민주화되어 있지 않은 현실이다. 읍면동과 통리가 정치적 민주화는 물론 행정적 민주화, 사회적 민주화가 되어야 주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주민자치다.
조선 향약이 주는 주민자치의 교훈
그렇다면 우리 역사에도 민주제가 있었을까? 조선의 향약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여씨향약이라고 하여 여씨 집성촌에서 주민들끼리 수평적으로 향약을 만들었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 와서는 양반중심의 향약으로 변질되어 수직적으로 되었다. 양반이 백성들을 통제하고 수탈하는 목적으로 변질된 것이다. 율곡 이이가 양반향약을 강력하게 반대한 이유다. 양반향약이 먹고 살기 힘든 백성들을 더욱 시달리고 곤란하게 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545년 명종 1년에는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 백운동서원을 창설했던 주세붕이 향약을 궁촌벽항(窮村僻港)에까지 실시하자고 건의하자 문정왕후는 “조광조 때의 향약은 도리어 폐가 있으니 향촌결계(鄕村結契)와 같은 것으로 환난에 대비-상휼(相恤) 하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답했고 이에 영의정 윤인경(尹仁鏡)은 “향약은 스스로 행하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행하여도 좋지만, 조정이 입법하여 시행하는 것은 어렵다”고 하였다.
향약을 백성 스스로 행하고자 한다면 좋지만 조정이 입법하여 강제로 시행하는 것은 어렵다는 의미다. 수평적 향약이 아니라면 백성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조선 향약이 주민자치에 주는 교훈은 수령의 관료행정, 사족의 양민지배를 목적으로 했던 향약들은 모두 실패했지만 상민과 주민, 즉 기층민들끼리 함께 하여 수평적으로 운영했던 촌계는 크게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 촌계가 바로 우리나라 주민자치 원형인 것이다.
향회조규, 제대로 가동된 역사 속 주민자치 조직
1895년에 들어 유길준 선생이 향회조규를 만들면서 우리 주민자치는 만개한다. 향회조규는 오늘날의 주민자치회법이다. 1895년 대한제국에서 법률로 반상차별을 철폐하고 주민이 회원이 되어 대표자를 선거하는 등 조선 향약 328년의 경험이 주민자치의 지혜로 되살아 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조선 주민자치의 결정판인 향회다.
실제 향회조규에는 대향회, 중향회, 소향회로 조직을 구성해 놓았는데 소향회는 리에 설치되어 매 호 대표가 모여 회장 선거를 하고 중향회는 면에 두어 소향회에서 회장1명, 대의원 2명 등 3명이 모여 면회를 구성한다. 여기서도 또 다시 3명이 모여 군회인 대향회를 구성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주민자치가 작동할 수 있는 조직 구성인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향회는 폐지되고 만다. 총독부가 통치체계를 도-군-면-리까지 수직적으로 완성해 주민자치를 지배해 버렸다. 지금의 읍면동 및 통리 역시 일제강점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무너진 지역사회와 공동체 의식 복구해야
우리나라와 일본의 주민자치를 비교해 보자.
일본은 패전 후 정내회라는 일본 전통의 주민자치 조직을 이어와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 향약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단절되었고 군정-한국전쟁-산업화-민주화라는 내홍까지 겪게 된다. 주민자치는 관치화되었고 사회는 도시화와 아파트화로 인해 급변했다.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와 공동체 의식은 모두 붕괴 되었다.
서구가 300년, 일본이 100년 걸려 만든 현대화를 한국은 30년 만에 일궈냈다. 서구는 촘촘하게 성장했지만 한국은 엉성하게 성장해 선착순 경쟁에서 이겼을 뿐이다. 이러한 선착순문화, 능력지상주의가 주는 폐해로 잘 사는 것만 생각하고 인간답게 사는 것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전통 있는 일본의 주민자치회인 정내회도 현재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며 혁신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대 사회에 맞는 주민자치회 실현을 위해 치열한 논의를 해야 한다.
실패한 주민자치 정책
여러분 동네에 주민자치센터가 모두 있을 것이다. 지금의 주민자치센터에는 주민도 자치도 없다. 공무원의 뜻으로 공무원의 사무로 공무원이 운영하는 주민자치센터만 있다.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은 인기 상업강좌만 운영하는 상태고 주민자치 사무는 부재되어 있다. 완벽하게 빗나가고 실패한 정책이 바로 주민자치센터다.
주민자치회 역시 유명무실하다. 행정안전부는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표준조례를 만들면서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제27조 주민자치회 설치에 관해 ‘풀뿌리자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해 읍면동에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를 둘 수 있다’는 조항에서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이란 문구를 삭제하였다.
주민자치회에서 주민이 사라진 것이다. 대신 위원으로 채워 넣었다. 주민자치회의 회칙 제정권이 박탈되었고 시군구 조례에 묶여 관치화되었다. 회장 선출권도 박탈되고 주미자치위원 공개추첨으로 인사권을 무력화시켰다. 재정권 역시 빼앗아 시군구 예산에 의지하게끔 예속화시켜 버렸다.
또한, 주민자치회 표준조례 제21조 ‘시장(또는 군수·구청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관련 법인 또는 단체 등으로 하여금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을 지원하게 할 수 있다’를 통해 시군구가 주민자치회의 설치 및 운영을 중간지원조직이라는 명분으로 시민단체에 위탁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조선시대 수령향약이 철저히 실패한 주민자치를 박근혜 정부는 그대로 받아 들여 역시 실패했고 사족 주도의 양반향약은 문재인 정부의 표준조례와 고 박원순 전 시장의 서울형 주민자치회가 그대로 답습해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
주민자치는 주민 스스로에게 맡기면 된다. 행정, 정치, 시장, 힘 있는 개인 등이 개입하면 안 된다. 주민끼리 수평적으로 연대를 맺어 운영한다면 국가, 정치, 시장, 시민단체, 개인 등이 할 수 없는 영역의 일까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스스로의 주인이 본인 자신임을 알아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주민자치를 해야 할까? 주민자치 잘하는데도 나름의 전략과 방법이 있다.
섭문공이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여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오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자치의 본질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사기>에 “형 나라 사람 중에 활을 잃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것을 찾으려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고 나와 있다. “형 나라 사람이 잃은 것을 형 나라 사람이 주워 쓸 테니 어찌 그것을 굳이 찾겠는가”라고 답하면 형나라의 주인이다. 공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거기서 형 나라라는 말을 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천하의 주인이 할 만한 대답이다. 그런데 노자는 “거기서 사람이라는 말을 빼면 좋겠다”고 답했다. 어떤 상황, 어떤 자리에서도 스스로의 주인이 본인임을 잊지 않는다면 그 자리가 모두 진리의 세계가 된다는 의미다. 주민자치에 필요한 철학이 아닐까?
주민들끼리 정치적 간섭이나 행정적 간섭 없이 스스로 연대할 수 있게 한다면 주민자치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여러분들이 주민자치에 관심이 더 있다면 언제든지 말씀 주시기 바란다. 힘닿는데 까지 알려 드리고 도와드리겠다. 주민자치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
사진=이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