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을 이야기하는 두 가지 방법,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 '군산전기'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Town in Movie

2024-09-23     윤성은 영화평론가

도시재생19세기 후반에 영국을 비롯한 유럽, 그리고 북미지역에서 시행되었던 도시재건’(urban renewal)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지역에 따라 그 의미는 조금씩 다른데 영국에서는 도시의 물리적, 환경적 측면과 건물을 개선하는 도시계획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고(urban regeneration), 북미에서는 쓸모없거나 황폐해진 곳을 생산적인 지역으로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도시재개발’(urban redevelopment)의 성격이 더 강하다.

1980년대에 유럽과 북미지역의 산업도시들은 새로운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다시 도시재생사업을 일으켰고 한국도 1990년대 후반부터 도시재생 개념을 수용해왔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책적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도시재생이 시작된 시기는 2013년경부터다. ‘도시재생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자 지자체들은 너도나도 이 사업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감독 조은성, 2024)군산전기’(감독 문승욱유예진, 2023)는 각각 인천과 군산이라는 두 도시에서 도시재생사업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 그 경과를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다.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의 두 도시 이야기

두 작품이 이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무척 다르다.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는 먼저 오래된 건물, 협소한 도로와 골목 등을 중심으로 재생과 재개발이라는 두 개념이 어떻게 상충하고 있는지 여러 인터뷰를 통해 들려준다. 그리고 성공적인 도시재생사업을 이루어낸 예로 일본의 쿠라시키와 오노미치 지역을 탐방하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그런 다음 다시 카메라를 인천으로 돌려 지역 주민들이 일구어낸 도시재생의 좋은 사례들을 담아낸다. 1882년부터 1945년까지 개항기에 들어온 서양음악을 발굴해 들려주는 인천 콘서트 챔버의 인천근대양악열전공연이 책갈피처럼 영화의 챕터를 나누어주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군산전기는 보다 미학적인 방식으로 이 주제를 형상화했다. 첫 장면부터 실험영화 혹은 미디어아트의 영상처럼 한 현대무용가(안나 앤더그)의 춤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군산의 주요 공간을 배경으로 군산에서라는 곡을 연주하는 첼리스트(송상우)를 비춰준다.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이 영상들은 영화 후반부에 여러 인터뷰이(interviewee)들이 카메라 앞에서 노래를 이어 부르는 시퀀스로 이어지며 이 다큐멘터리의 뮤직드라마 같은 성격을 잘 드러낸다.

재즈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임인건은 2019년에 군산으로 이주한 지역 주민으로서 이 다큐멘터리의 음악을 맡아 도시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담아냈다. 안나 앤더그가 군산의 중요한 공간들을 돌아다니며 그 공간의 역사와 분위기를 몸으로 표현한 영상들도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된다. 대중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형식이지만 군산을 매우 인상적으로 소개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이렇게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인천과 군산의 서로 다른 특성 때문일 것이다. 공히 항구도시이고 일제 강점기 때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일본인들이 거주지를 조성해 그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는 공통점도 있으나 두 도시에는 두드러진 차이점들이 있다.

 

 

카페 팟알’ ‘서담재’ ‘싸리재토박이 많은 인천의 도시재생 방식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인천에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들이 많은 반면, 군산에는 이주민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에는 자신의 고향이 완전히 낯선 곳으로 바뀌어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는 인터뷰이들이 많다. 그들은 오래된 건물을 무너뜨리는 대신 골조는 가능한 살리면서 내부는 현대적으로 개조하는 방식으로 도시재생의 가닥을 잡고 있다. 훨씬 돈도 많이 들고 신경도 많이 쓰이는 작업이지만 그런 과정을 거친 공간들은 구도심의 핫플레이스로 거듭나고 있다.

카페 팟알(Pot-R)’1890년대 지어진 일본식 목조건물(등록문화재 제567)을 개조한 카페다. 백영임 대표는 이 오래된 건물의 주인에게 문화재 보존에 대한 책자를 드리며 집을 절대 부수지 말고 팔려거든 자기에게 팔라고 했더니 어느 날 연락이 왔다고 말한다. 그는 지역 주민들이 이 건물에 얼마나 많은 기억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들려주며 그것의 가치는 환원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서담재의 이애정 대표는 인천 토박이로서 인천의 정체성 혹은 역사성을 훼손하는 개발에 대해 반대한다. 1935년에 건축된 공유공간 서담재건물은 일본 기업체 사장의 관사였다. 지금은 인문학적 복합문화공간으로 변모해 많은 지역 주민들이 쉬고 공부하고 교류하는 공간이 되었다. 건축물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 방문자들은 이 전형적인 일제 강점기 관사 내부를 현대적으로 개조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고. 그러나 이대표는 내부까지 그대로 보존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으며 주민들이 다양한 문화 행사를 즐기고 자주 찾기에 편리한 공간으로 리모델링 한 것에 대해 만족감을 표한다.

싸리재는 인천 중구 개항로 78번지 일대를 뜻하는 말로 1920년대는 인천의 새로운 문화와 유행을 이끌던 중심지였다고 한다. 이 고갯길에 싸리나무가 많았다고 해서 붙여지는 이름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주민들도 싸리재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싸리재의 찬란했던 역사도 그 명칭과 함께 잊혀져 갔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박차영 대표는 이곳에 연 카페의 이름을 싸리재로 지었다. 1910년대에 지어진 전통한옥을 개조한 이곳에서 박 대표는 인문학강의와 독서모임을 열고 있다. 인테리어 업자들이 처음에 공사기간 2, 980만원을 불렀던 건물 리모델링은 6개월 동안 1억이 훨씬 넘게 들어갔지만 개발과 보존은 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박 대표의 신념이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문화예술인들이 오래된 건물을 활용하고 있는 사례들도 많다. 이런 활동은 모두 도시재생사업과 크고 작은 연결고리가 있다. 정희석 작가는 1920년대 지어진 소금창고를 개조해 자신의 작품도 전시하고 예술가들이 모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었고, 민운기 대표는 1926년에 만들어진 양조장을 보고 매력을 느껴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 창작가들이 함께 모여 도시재생을 논의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오석근 작가는 복숭아 꽃이라는 인천 중심의 예술 활동 단체를 통해 낡은 건물을 장기 임대해 신흥동 일곱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신흥동 재건축지역에 남아있는 일제 강점기 적산가옥 중 7개의 집을 선정해 각 주택에 대한 도면 및 해설, 각종 자료들을 사진, 영상, 드로잉 등으로 기록하여 출판하는 것이다. 오 작가는 예술가들이 지역의 역사와 환경에 영감을 받아 좋은 작품을 만들듯 이러한 작업이 후세에 더 의미 있는 자료로 남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방인들의 도시군산의 쓸쓸함과 애잔함 속에 피어나는 희망

군산전기에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와 같은 도시재생의 구체적 사례들이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대신 상당한 분량을 이 도시의 역사를 이야기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군산은 불과 몇백 명의 주민만이 살았던 어촌 마을이었다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쌀 수탈을 위해 이곳에 항구를 열면서 전국의 노동자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바둑판 같은 구도심의 도로와 적산가옥들은 일제 강점기의 소산이다.

일본인들이 군산을 떠나자 미군이 들어와 도시를 점령했다. 영화동의 구 아메리카 타운은 그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최근에는 대기업 공장이 들어섰다가 폐쇄되면서 군산시민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기기도 했다. 영화는 또한 2002년 개복동 집창촌에서 불이 나 열네 명의 여성이 사망한 슬픈 사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역사는 임인건 작곡가가 음악에도 담았듯이 이방인들의 도시로서 군산의 쓸쓸함, 애잔함 등을 십분 이해하게 한다.

그러나 그 이방인들은 지금, 친절한 토박이들과 어울리며 보금자리를 일궈나가고 있다. 타지로 나갔던 이들이 돌아오기도 한다. 서울에서 유명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송성진 대표는 휴먼웨어가 건축물의 재생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고향인 군산 원도심에 재즈 클럽을 만들었다. 젊은이들에게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도시에는 희망이 있다.

도시재생의 여러 얼굴과 사례들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도시의 역사와 분위기를 보다 서정적으로 묘사한 영화가 궁금한 이들에게는 군산전기를 권한다.

 

사진=영화사오원/블루필름웍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