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토론회에 앞서 정문호 전 소방청장의 기조강연 ‘이태원 참사 무엇이 문제인가?’는 재난관리 및 예방, 대처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던져줬다.
정문호 전 청장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그렇게 많은 희생자들이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후진국형 사고이며, 여러 기관들이 10만여 명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했으면서도 행정안전부, 서울특별시, 용산구청 및 경찰의 형식적이거나 미흡한 조치를 하였고, 특히 10여 차례 이상의 압사 및 사고 가능성에 대한 신고 전화가 있었음에도 미흡한 조치로 발생한 사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무한책임을 주장하면서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오히려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축소하기에 바쁘고, 유가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공감해 줌으로써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도와주어야 할 정치권은 연이은 망발로 유가족에게 2차 재해를 가하고 있다”고 서두를 꺼냈다.
그는 “국가나 지방정부가 국민에 대한 안전관리를 소홀이 하여 158명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의 경우는 특별수사본부의 수사의 화살이 일선 실무자들에게만 향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 참사가 정쟁의 대상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으며, 정확한 사고원인의 조사와 재발방재대책, 성역 없는 수사와 책임자의 처벌이다. 따라서 정부는 다시는 유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확한 원인을 조사하고 부족한 법·제도 등을 보완하여 더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다시는 유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확한 원인 조사-부족한 법․제도 보완하는 계기 되길
강연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는 가파르고 비좁은 골목에 엄청난 인파가 몰렸음에도 안전사고에 대비한 현장관리 및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헌법 제34조 제6항에서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재해 예방에 대한 의무를 지니고 있으며, 국민의 안전권을 보장해야 함을 명시한 것이다. 또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4조(국가 등의 책무)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ㆍ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고, 재난이나 그 밖의 각종 사고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발생한 피해를 신속히 대응ㆍ복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ㆍ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6조(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의 총괄ㆍ조정)에서는 “행정안전부장관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행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업무를 총괄ㆍ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위해발생의 방지등)에서는 경찰관은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극도의 혼잡 등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에는 경고, 억류, 피난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방기본법 제16조(소방활동)에서는 “소방청장, 소방본부장 또는 소방서장은 화재, 재난ㆍ재해, 그 밖의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에는 소방대를 현장에 신속하게 출동시켜 화재진압과 인명구조ㆍ구급 등 소방에 필요한 활동을 하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문호 전 소방청장은 “행정안전부장관은 재난 및 안전관리업무를 총괄·조정하여야 함에도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였으며, 경찰은 극도로 혼잡한 사태에도 필요한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아 발생한 결과이므로 관재(官災)임이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태원 참사의 예방 및 대응 등 재난관리의 과정상 전반적인 문제점에 대해 정 전 청장은 첫째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많은 기관들이 있으나 그 기능과 역할을 다하지 못했으며, 특히 통합재난관리의 중심인 행정안전부의 총괄·조정 및 상황관리 기능도 작동하지 않았다, 둘째 참사의 핵심요인은 재난 발생 후 대응의 문제가 아니라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의 문제이다, 셋째 참사에 대한 정확한 원인 및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넷째 재난관리를 담당하는 기관의 전문성의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통합재난관리의 중심인 행정안전부의 총괄·조정 및 상황관리 기능 작동하지 않아
또 재발 방지대책으로는 △주최자 없는 행사의 안전관리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로 명문화 △재난 및 안전관리는 중복 및 과잉대응으로 골든타임 놓치지 않도록 대처 △헌법에 국민안전권 명문화 △독립적인 상설 사고조사위원회 설치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재난관리전담부서 전문성 강화 △주민자치활동 활성화 △민간 안전관리 대행업 제도의 도입 등이다.
이중 ‘주민자치활동 활성화’ 관련해 정문호 전 청장은 “재난 발생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에 대한 안전관리 교육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어린이나 학생들에 대한 안전관리 교육은 학교 교육과 안전체험관 등을 통하여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성인과 노인들에 대한 안전교육이 미흡한 실정”이라며 “안전의식과 위기상황 판단능력의 함양,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 교육 및 재난발생시 행동요령 등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훈련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이번 이태원 참사 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심폐소생술에 동참하여 활동한 것과 같이 대형재난 발생시 부족한 대응인력을 주변의 시민들을 활용할 수 있다면 피해를 감소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주민자치 활동의 일환으로 지역의 소방관서와 안전체험관과 연계하여 지역주민들과 특히 노인이나 재난약자들을 위한 순회 또는 방문교육을 실시한다면 지역사회의 안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소화기 및 단독경보형 감지기, 자동 가스차단기, 일산화탄소 감지기 등 안전장비의 보급운동과 우리 동네 및 아파트단지 등의 취약요인의 점검과 안전활동 등도 주민자치활동의 일환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처벌 위주 정책 한계…정확한 원인 분석과 진단 실시해 적절한 대책 마련해야
맺는말에서 정문호 전 소방청장은 “재난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이 언제나 빈틈을 노리고 있다가 우리가 조금만 방심하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단순히 운이 없었던 것으로 치부한다던지, 정확한 원인 분석과 진단을 실시하여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우리는 반복되는 사고에 직면할 것”이라며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처벌 위주의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재난관리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재난예방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재난발생의 원인은 워낙 다양한 요인이 존재하므로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위험요소에 대한 전반적이고 반복적인 점검과 언제나 좀 지나칠 정도의 예방조치를 실시하고 그래도 발생하는 재난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복구활동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울러 정치권에서는 재난의 발생을 지나치게 정쟁의 대상으로 삼거나 당리당략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어서는 국민의 안전과 유가족들의 아픔을 치유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기조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