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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제·분직 통해 사회적 자원의 효율적 분배·생산 가능한 유가적 공적 세계 실현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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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제·분직 통해 사회적 자원의 효율적 분배·생산 가능한 유가적 공적 세계 실현 구상”
  • 김윤미 기자
  • 승인 2024.06.24 1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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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연구회·한국주민자치학회 2024년 공동학술회의] 공공성과 주민자치-공공성에 대한 철학적 고찰
[3] 『경세유표』를 통해 본 다산의 유가적 공적 세계의 기획

공적 세계’ ‘공공성의 개념이 주로 서양철학사상의 기반 위에서 논의되는 가운데 대표적 실학사상가인 다산 정약용이 바라본 유가적 공공성의 세계는 어떠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철학연구회(회장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와 한국주민자치학회(회장 전상직 중앙대 특임교수)는 지난 20일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 그레이트하모니홀에서 공공성과 주민자치-공공성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주제로 첫 공동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특히 이날 세 번째 주제발표로 김선희 이화여대 교수가 경세유표를 통해 본 다산의 유가적 공적 세계의 기획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진행했으며 배수호 성균관대 교수가 논평에 참여했다.

먼저 김선희 교수는 본격적인 발제에 앞서 오늘 발표는 경세유표에 나타나는 다산 사상의 중층성을 분별하고 맥락화해 보기 위한 시도다. 경세유표에 보이는 국가 개혁론과 관련된 다산의 학술적 기획을 재검토하려는 것이며 유가적 공적 세계의 구축을 위해 경세유표가 제안하고자 하는 기획, 이로 인해 구성될 세계에 대한 다산의 사유와 방법이 우리의 기대와 만나는 지점에 형성되는 어떤 긴장과 부정합을 드러내 보여주는 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서두를 꺼냈다.

 

다산에게 군주는 공적 세계의 중심토지 사유화가 개혁 핵심

그는 경세유표연구에서 초기부터 논점이 되었던 것 중 하나는 강력한 군권 문제다. 경세유표에서 다산은 전략적으로 군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물론 다산의 왕권론이 왕권강화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왕권을 명목화 하려는 재상중심론이라는 평가도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다산이 경세유표에 내세운 강력한 왕의 이미지가 약화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산이 묘사하는 군권의 이미지는 황극(皇極)’이라는 상징 안에 담겨 있다라며 조선에서 황극은 그 자체로 군주를 상징하는 관념이었다. 주희는 황극으로서의 보편적이며 포괄적인 책임을 인륜(人倫)’으로 규정함으로써 수신(修身)’이라는 군주의 도덕적 자기 검열과 실천을 강조하는 구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다산은 주희의 구도를 이탈한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김 교수는 다산은 군권의 위상과 역할에 정전제의 발상을 연결하고 있다. 권력을 아래로 끌어내려 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결국 황극을 망치는 일이며 국가를 망치는 일이다. 다산은 이 맥락에서 왕을 강력한 공적 세계의 중심으로 표상한다. 특정한 인격성을 찬양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사로움을 막을 진정한 공적 존재로 묘사하는 것이라며 다산의 관점에서 군주의 위대한 공적 분배를 막는 것은 중간에서 사리를 채우는 탐관오리와 교활한 관리들이다. 다산은 권력의 집중과 전횡을 막기 위해 개설되어 있던 청요직 조차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들이 결과적으로 군주의 사적 인맥(人主之私人)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유학자들에게도 사()는 그대로 도덕적 안으로 치환되었지만 다산은 특히 국가의 운영 차원에서 사()를 공()을 위협하고 그리하여 공공(公共)의 실현 가능성을 막는 적극적 악으로 규정한다고 짚었다.

김선희 교수는 또 국가 차원의 사() 가운데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토지를 사유하는 것이다. 토지가 사유화되자 군은 공을 실현할 방법과 기회를 잃게 되었다. 다산은 이 맥락에서 군권의 강함을 그대로 공의 포괄성으로 치환하고 사를 공에 대한 적대로 해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일은 사유화된 토지를 왕에게 되돌리는 일이다. 문제는 어떻게 토지를 다스릴 것인가의 실질적 방법이다라며 공으로서의 극을 유지하는 방법은 토지의 사유화를 막고 다시 공유화하는 것이고, 이처럼 토지를 공유화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왕권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강력한 왕권의 이미지는 백성들을 상대로 한 상대적 권력이 아니다. 이는 중간에서 이익을 취하는 중간 집단을 와해시키고 이들의 관행을 작동하지 못하게 막을 힘이다. 이때 일종의 절대왕권은 백성들을 향해 투사되고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통치 행위의 중심이자 공공성의 중심으로 수렴되는 성격을 가진다. 조선에서 왕은 사를 극복한 공의 최대화이자 공정으로서의 정치를 작동하게 하는 도덕적 공공성의 표상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선희 교수는 이처럼 사유 재산을 확보한 중간 계층을 사()로 규정하는 공적 군권의 강화는 사()에 의해 착취당하던 민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민생과 연결되는 듯 보인다. 자의적 힘이 아니라 공정한 표준으로서의 군주가 모든 재부를 나누고 직능을 배치한다면 백성들은 가렴주구의 고통에서 벗어나 더 역동적으로 조선이라는 국가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부가 고르게 분배된다는 것과 백성들이 일종의 민권을 갖는다는 것은 다를 것이라며 이 대목에서 군권과 민권은 공적 권력으로서 시혜의 주체와 대상이라는 위계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다산의 다른 진술에서 군권과 민권은 시혜를 내리고 받는 위계적 관계와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적극적으로 민권을 말하는 듯한 다산을 다른 글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민권에 대한 다산의 이해는 다산의 진보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사용되어 왔다고 밝혔다.

 

왕권 강화, 세습군주제의 한계 속 공적 제도 구현 위한 교량효율적 공공 세계 현실화 전략

발제에 따르면, 다산이 보여주는 민권에 대한 가장 강력한 진술은 주지하듯 탕론에 등장한다. 많은 연구자들이 탕론에 등장하는 하이상의 군주론이 민주주의적이라고 평가한다. 만일 그렇다면 탕론민주주의적군주 추대는 황극론의 절대 왕권에 비추어 모순처럼 보인다. 한쪽에서는 민주주의적 추대를 논하고 다른 쪽에서는 강력한 무소불위의 왕권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경세유표내부에는 왕권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에 대해 명시적으로 표현한 구절이 없다. 어질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필요한 것이 경국대전이나 경세유표와 같은 헌법적 규범이자 실질적 지침들이고 이에 따라 포악하고 음탕한 부도덕한 천자의 경우에만 폐위되고 다시 추대의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면 추대라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과정을 통과한 군주에게, 다시 말해 도덕적 검증을 통과해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한 군주에게 백성들에 대한 책임을 맡기며 강력한 권한을 인정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면 강력한 왕권과 하이상의 추대 방식은 충돌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김선희 교수는 왕의 추대 방법과 추대된 왕의 위상은 세습 군주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모종의 절충적 결합의 논리라고 볼 수 있다. 다산은 절대적인 존재가 곧 왕이라는 것이 아니라 왕이 된 이후에 절대적인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것에 가깝다.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는 것은 세습이나 힘에 의해 그 자리에 얻은 것이 아니라 현명한 사람들의 추대에 의해, 다시 말해 합리적 판단을 바탕으로 한 다수의 검증을 통과한 뒤에 그 자리에 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황극론과 후대를 모순 관계로 보지 않아도 된다라며 새로운 유교 국가 조선의 청사진이자 설계도였던 경국대전은 근본적으로 세습군주제의 한계를 명확하게 명시한다. 군주는 얼마든지 어리석고 유약할 수 있다. 이를 보완하는 것이 총재여야 하며 실제로 군주에게 기대되는 어떤 자질을 끌어내고 실현시키는 것은 재상 이하 관료의 몫이 된다. 근본적으로 경국대전에서 왕은 궁부일체론에 따라 사유재산을 소유하지 못했으며 실질적인 인사권이나 정책의 집행권이 부여되지 않았다고 부연 설명했다.

그런데 경세유표에서 군주의 권위는 강력하지만 직속 기구가 없어 실질적 권력을 행사할 방법이 없다. 더 나아가 다산은 총재와 같은 강력한 왕권의 대리자를 요청하지 않는다. 실제 국가 경영을 맡은 것은 삼공이다. 다산이 묘사하는 삼공의 직무는 사실 왕에게 기대되는 정치적 행위의 내용들이다. 삼공은 실질적인 정책을 입안하고 실현시킬 중심이지만 왕이나 왕권을 대행하는 총재와 달리 제도 내의 존재다. 이때 왕권의 강화는 세습군주제의 한계 속에서도 공적 제도의 구현을 위해 가설한 교량이자 전권을 가지고 왕을 통제할 강력한 총재의 출현을 막는 방어책이며 그러한 한에서 다산이 구상한 효율적 공공의 세계를 현실화하기 위한 전략적 방법이 된다.

능력에 따른 분배사회적 약자 우선 보호 대상 아닌 효율 극대화 후 구제받는 대상

그렇다면 다산에게 정치적 효과의 실질적 수혜자로서 민()은 어떤 존재였을까?

김선희 교수는 “1804년 강진에서 쓴 시 하일대주(夏日對酒)’에 담긴 날카로운 통찰과 고통에 대한 연민은 다산을 이해하는 하나의 중요한 창을 제공한다. 이 시에서 다산은 균등하고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은 세계에서 약자로서 사회적 고통을 떠맡는 민초들[首黔者]에 대한 깊은 연민을 보이며 약자인 백성이 아니라 부를 독점한 부자[富人]들에게 취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이 지점에서 국가의 부를 독점한 중간 계층에 대해 분노하고 이를 조정하려는 제도 개혁의 기획자 다산의 심정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라며 다산이 고통이 한쪽으로 편중되는 불합리한 구조에 대해 깊이 통찰하고 약자인 백성에 대해 연민을 가졌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제도 개혁을 기획하는 국가 체제 기획자로서의 다산에게 이러한 약자를 연민하는 시적 감수성을 곧바로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발제에 의하면, 경세유표에서 다산은 철저히 능력에 따른 분배를 주장한다. 전지의 분배와 운영 등 국가적 계책은 백성의 살림을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최대화하는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다산은 국가의 생산을 토지에 한정하지 않고 백성들을 개별 직능에 고르게 배치하고자 한다. 이 맥락에서 흥미로운 것은 전지를 분배하는 기준이다. 다산은 철저히 능력에 따라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산은 철저히 능력에 따른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무능한 자들이 토지를 차지하지 않아야 함을 강조한다. 문제는 이 무능한 자들이 곧 약자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앞의 시 속에서 다산은 열 아들에게 고르게 분배해야 곳간은 비어 있는데 아프기까지 한 약자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경세유표속에서 다산은 철저히 능력에 따른 분배를 강조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권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

김 교수는 다산이 무능한 자들에 대해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산의 약자는 우선적 보호 대상이 아니라 효율이 극대화되었을 때 구제받는 대상이다. 다산이 약자를 철저히 도태되는 사회진화론적 세계를 구상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산의 목표는 국가의 효율적 운영과 약자 보호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정치의 실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산은 반복적으로 균분이 아니라 능력에 따른 차등적 배분을 강조한다. 국가를 효율적인 기계처럼 조직해서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능력자에게 집중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능력이 없어 배제하거나 탈락하는 이들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다. 능력자가 최대로 생산해서 그 결과가 약자에게까지 돌아갈 것이라는 이상적 기대가 실제로 현실화 된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할 약자의 도태, 소외, 배제에 대한 보호 장치가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산이 이처럼 능력을 강조하는 것은 결과로서의 평등이 아니라 공적 안정성 확보를 위한 단계별, 상황별 장치들에 집중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또한 김선희 교수는 그가 직접 진술한 문맥 안에서 다산은 강력한 신분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사족으로서의 자부심과 지도적 역량을 강조했다라며 정전제와 분직이라는 방법을 통해 다산은 사회적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생산할 수 있는 유가적 공적 세계를 실현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이 공적 세계의 주체는 사족이었을 터이지만 다산이 구상한 세계가 실제로 실현되었다면 그 효과는 아마도 신분제를 무너뜨리는 데까지 나아갔을 지도 모른다. 직능에 따른 분화가 활발해지면 어떤 면에서 민의 자율성이 확대되고 그 자율성이 신분의 장벽을 조금씩 낮추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산이 기대한 결과가 아니라 다산이 기대한 결과가 미칠 미래적 효과에 가깝다. 구상한 세계를 이루기 위해 방법으로서 능력있는 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논한 것이지 결과로서의 평등한 사회를 추구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평등한 사회는 그가 구상한 기획의 결과가 미래에 끼칠 효과로 한정해서 읽어야 한다고 짚었다.

 

유학자 다산의 공적 세계, 단순히 효율적 세계가 아닌 공적이어서 모두에게 정의로운 도덕적 세계

계속해서 그는 유학자로서 다산에게 공적 세계는 단순히 효율적인 세계가 아니라 공적이어서 모두에게 정의로운 도덕적 세계였을 것이다. 공정이 곧 정의이고, 이 정의의 표현이 예라면 결과적으로 다산은 예치의 이념을 현실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과 전략을 통해 일종의 도덕적 평형 상태를 추구했는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외부의 간섭이 없다면 무한히 지속될 수 있는 안정적 상태로 끌고 올라가기 위해 다양한 불균형과 힘의 위상차를 줄이고자 했다는 것이다. 다만 이 불균형과 위상차를 줄여 모종의 균형점으로 되돌리는 과정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매끄럽거나 진보적이지 않다. 다산에게 서구가 선취한 역사적 결과로서의 근대 혹은 자유로운 인간에 의한 사회의 합리적 운용과 진보라는 이념으로서의 근대는 그가 기대하던 미래가 아닐 뿐 아니라 긴장하며 의식하던 목표도 아니었다. 따라서 다산의 제안을 현재 우리의 기대 무엇보다 근대성에 대한 기대에 비추어 평가하는 방식에 대해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김선희 교수는 다산의 기대와 우리의 기대 사이에 생기는 위격은 어쩌면 더 큰 이념적 전거를 토대로 그 이념을 선취한 자로서의 권위와 자긍을 가지고 위에서 아래를 향한국가의 재건과 재구성을 구상할 때 생기는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다산의 사상 역시 주자학이나 중세 신학을 비롯한 모든 큰 철학, 유일한 보편학을 자임하는 거대 학문이 가지는 추동력과 가능성을, 그리고 한계와 경직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발제 후 논평을 맡은 배수호 성균관대 교수는 경세유표에서 왕, 군주는 공적 영역을 표상하고 공공부문의 정점에 있는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주장하는 강력한 왕권과 군주권의 강화는 일면 공과 사, 공공성을 영역성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유학자로서 다산은 공공성을 왕으로 상징/대변되는 공적 영역뿐만 아니라 윤리적·도덕적 정당성을 나타내는 공()을 동시에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즉 왕과 군주는 공적 영역에서 사사로움()을 없애고 공을 실현하는 주체이고 공적 영역에서 구심점으로서의 위치와 역할을 수행하도록 주문한다. 발제자 역시 이러한 논점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라며 다산은 강력한 왕권에 따른 권력의 오남용과 부작용에 대한 고민을 통해 왕권에 대한 견제와 균형, 즉 유교적 헌정주의 혹은 유교적 공화주의를 고민하고 있었던 듯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다산은 능력주의, 능력에 따른 차등 배분을 강조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권을 후순위로 배치하고 있는 듯하다. 오늘날 능력주의’, 국가의 부 극대화와 효율성 증진의 논리와 맥이 닿아 있는 듯한 주장이다. 또한 전지(田地)를 능력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이 배분하여 농업생산력을 극대화하고 잉여의 생산물로써 사회적 약자들을 구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은 언뜻 공리주의의 주장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민을 비롯한 인간을 이기심을 가지고 자신의 욕구를 합리적으로 추구하려는 존재로 파악했던 것은 아닐까. 일부 구성원에게 손해가 나더라도 파레토 효율성을 충족하고 사회적 부와 생산량이 초과 달성하여 이들 부와 생산량의 일부를 보상하고도 남는다면, 해당 정책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발제자가 주장하였듯이 실질적 보상/분배가 아니라 잠재적 보상/분배이라는 점에서 한계점을 노정 할 수밖에 없다라며 다산은 직능에 따른 분업이야말로 공적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구축, 운영할 수 있고 전 국가 차원에서 효율성을 충족하고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발표자의 지적대로 엘리트주의적 지향성을 강하게 품고 있던 다산에게 계급을 넘나들면서 개인의 적성이나 의지, 능력에 따라 직능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짚었다.

정치적·행정적 측면서 공공성을 효율성’ ‘분배문제로 파악, 여러 제도적·절차적 장치 고민

계속해서 배수호 교수는 다산의 공공성은 복수적 층위, 복잡성, 상충성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공성의 영역성 강조 vs. 윤리성·도덕성, 강력한 왕권 강화 vs. 왕권에 대한 견제와 균형, 민에게 균등한 배분 vs. 능력주의 및 능력에 따른 전지의 분배, 효율성 vs. 균분, 능력에 따른 분업 vs. 신분계급제 등등. 또한 다산에게서 공공성은 효율성, 효용 극대화, 均平, 공정 등 다양한 가치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산 사상의 깊이와 넓이가 만만치 않으며 그의 사상 안에서 질서와 통합을 찾아내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라며 그럼에도 다산의 사상에는 이상과 현실의 연결 및 접점을 끊임없이 고민하였고 현실적 인식에 기반하는 정책적 처방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는 깊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정치적·행정적 측면에서 공공성을 효율성분배문제로 바라봤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제도적·절차적 장치를 고민하고 제시하였다. 다산을 비롯한 조선 유학자들의 사상을 서구의 사상과 병렬로 세워 직접 비교하는 것은 상당한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 최근 근대성개념에서도 서구적 근대성만이 아니라 여러 유형의 근대성과 그 특성들이 논의되고 있다. 민의 주체성과 가능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의견의 일치를 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다산은 과연 민권의 확장가능성에 주목했을까. 일각에서는 다산을 고루한 엘리트주의자로서 민을 수동적, 시혜적 존재로만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보는 반면 다른 일각에서는 민을 공정성을 판별할 수 있는 도덕적 주체’, ‘정책과정에서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로 파악한다고 지적했다.

 

사진=문효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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