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관심과 기대 속에 도입되었으나 그만큼 많은 논란과 문제를 노정하고 있는 ‘주민참여예산제’를 보다 꼼꼼하게 짚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주민자치학회는 지난 18일 ‘한국 주민참여예산제의 진단과 개편방안’을 주제로 한 제97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를 서울 인사동 태화빌딩에서 개최했다. 최흥석 고려대 교수가 좌장을 맡은 이날 세미나에서는 조성호 경기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이 발제자로, 전영평 대구대 명예교수와 류춘호 부산시의회 입법담당관 그리고 이장욱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이 토론자로 나섰다.
먼저 조성호 연구위원은 “행정학 분야 패러다임의 변천으로 ‘전통적 관리론’, ‘신공공관리론’ 그리고 ‘신공공서비스론’을 들 수 있다. ‘전통적 관리론’은 공급자인 공무원 중심, 법제 중심의 고전적 패러다임이고 ‘신공공관리론’은 주민, 시민을 고객으로 보는 기업가주의적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신공공서비스론’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민이 고객이 아니고 주인이므로 시민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이제까지 주인노릇을 했던 공무원들이 주인인 시민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나온 게 주민참여예산제이고 세계적 추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잘 안될까? 공무원들이 여전히 자신들이 주인이라고 생각하기에 예산 편성은 자신들이 해야 하고 주민들에겐 의견 수렴 정도만 해도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공무원 대상으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인식의 전환, 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서두를 꺼냈다.
‘2011년 첫 도입’ 주민참여예산제 ‘정부주도적 예산참여형’ 한계
그는 발제에서 “주민참여예산제는 조직구성원의 참여를 강조하는 참여예산제나 성과주의 예산제와는 달리 공공부문에서의 예산운영은 효율성과 지출가치의 극대화보다는 예산주권의 극대화가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한 정당(민주노동당)의 선거공약으로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리시(市)의 참여예산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그리고 2011년 3월 지방재정법에 주민참여예산제 실시가 법적으로 의무화되면서 전국적으로 주민자치제가 확산되어 현재까지 13년째 주민참여예산제가 시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주민참여예산제는 성과보다는 많은 한계점을 노정하고 있는데 첫째 참여시민의 예산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 부족, 둘째 집단 이기주의 혹은 소수 개인이나 단체의 독점 등이 제시되고 있음, 셋째 절차적 합리성의 결여, 넷째 의회기능과의 충돌, 다섯째 중앙정부가 제시한 표준조례안에 따라 도입한 결과로 나타나는 제도의 형식화 등이 지적됐다. 현재 우리나라는 ‘주민참여예산제보다는 형식적 참여예산제에 가까운 것’으로 분석 평가된다. 예산결정권한이 시민중심이기 보다는 관료중심으로 되어 있으며 의사전달 유형이 지방정부와 주민 간의 쌍방향이기 보다는 하향적(정보제공형) 내지 소극적 협의형에 가깝다. 주민의 참여 정도의 경우에도 형식적 참여단계(정보제공, 상담, 회유), 주민권력 초기단계(협동)인 것으로 분석된다"라며 “앞으로 우리나라 주민참여예산제는 정부주도적 예산참여형을 넘어 시민주도적 예산참여형으로서 주민참여예산제 2.0으로 개혁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발제에서 조성호 연구위원은 주민참여예산제의 이론적 논의를 검토하고 국내 주민참여예산제의 현주소와 실태를 분석평가하며 외국의 주민참여예산제를 분석하여 한국형 주민참여예산제의 개편모형을 제시했다.
발제에 따르면, 주민자치예산제의 개념은 ‘지방재정법 제39조’에 나와 있듯이 ‘지방예산 편성 등 예산과정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 ‘자치단체의 예산을 편성할 때 주민이나 전문가가 참여해 지방재정 운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제도’로 최초 도입됐다. 조례 제정은 2003년 8월 광주광역시 북구였으며 2011년 지방재정법 개정을 통해 실시가 의무화됨에 따라 전국으로 확산됐다. 주민참여예산제의 필요성의 배경으로는 ‘지방재정의 투명성 및 효율성 제고’ ‘주민의 알권리 보장’ ‘풀뿌리민주주의 실현’ 등이 꼽힌다. 주민참여예산제의 유형으로는 ‘일반참여예산사업’ ‘주민제안 사업형’ ‘공모사업형’ ‘자치계획형 사업’ 등이 있다.
조성호 연구위원은 “주민참여예산제는 2018년 ‘예산편성’에 한정하지 않고 ‘예산의 편성, 집행 등 예산 전 과정’으로 확대됐으며 2020년 1월 주민참여 예산 현황 및 주민의견서 공시제도를 도입했다. 각 지방정부에서는 분과위원회, 운영위원회, 총회, 지역회의, 연구회, 민관협의회, 청소년위원회, 예산학교 등의 다양한 기구를 설치・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 주도 행정 중심 ‘시행의 형식화’ 심각…해외사례로 본 개편방향은?
이어 조 연구위원은 서울시, 경기도, 제주시, 수원시, 서울 은평구 등을 중심으로 주민참여예산제의 운영사례를 분석했다. 그는 “우리나라 주민참여예산제의 모델은 정부주도적 예산참여형으로 분석된다. 주민참여예산제의 대표적 운영기구는 주민참여예산위원회로 위원은 공개모집 절차에 의해 선발 혹은 읍면동장 등의 추천에 의해 선정된다. 이러한 주민참여예산위원회는 주민들의 중장기 예산편성 및 예산편성에 대한 의견을 취합하여 시군구 집행부에 전달한다. 시군구는 제출된 주민의 의견을 일부 수용하여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한다”라며 정부주도적 예산참여형의 문제점과 개선과제로 1)참여대상 측면에서 지방의회뿐만 아니라 주민 전체가 참여해야 한다, 2)심사–선정–확정으로 이어지는 주민참여예산의 진행과정은 주민참여보다는 행정이 참여하고 참견하는 등 행정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3)주민참여예산은 주민이 계획하고 실행하며 평가해야 하는데 현재 주민참여 공모사업은 응모된 사업 중에서 행정이 취사선택하겠다는 오만한 형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가장 심각한 사안으로 ‘시행의 형식화 문제’를 꼽았다.
다음으로 조성호 연구위원은 일본의 돗토리현, 브라질의 포르투 알레그리시, 스페인 알바세테시, 미국 뉴욕시, 프랑스 파리시 등 외국사례를 소개한 뒤 우리나라 주민참여예산제 개편모델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1)‘일반참여사업’은 포르투 알레그리시 제도를 벤치마킹한 ‘주민총회 주도형’으로, 2)‘주민 제안사업 및 공모사업’은 일본 사이타마현 시키시 형태의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주도형’으로, 3)‘자치계획형 사업’은 일본 미에현 니바라시의 ‘지역회의 주도형’으로 각각 제시했다.
먼저 포르투 알레그리시 형태의 ‘주민총회 주도형’은 제1차 시민총회–대의원위원회–제2차 시민총회–참여예산평의회–시의회 예산심의 순으로 구성된다.
주민총회 주도형: 포르투 알레그리시의 주민참여예산제
자료: 서정섭 외(2018). 「지방자치단체 주민참여예산제 발전방향」, 지방행정연구원을 수정.
이에 대해 조 연구위원은 “일반참여사업은 예산편성에 많은 주민의 참여가 필요하고 주민의 대표성 확보가 중요하다. 따라서 주민총회형 주민자치제를 도입하여 주민참여예산 위원회 위원도 주민총회에서 선발하고 주민총회를 통해 주민 의견이 반영된 주민참여예산을 행정이 존중하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계속해서 사이타마현 시키시 형태의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주도형’은 ‘민관 협력형’으로 시민위원회에서 시민들의 예산을 편성(예산의 우선순위 결정 등)하고 시민의 관점에서 예산편성 의견을 수렴하는 제도로 예산편성에 대한 설명회, 협의회, 공청회 등의 방식을 통해 시민의 참여를 개방하는 제도다.
주민참여예산위원회 주도형: 사이타마현 시키시 주민참여예산제
이 모델과 관련해 조성호 연구위원은 “주민 제안사업 및 공모사업은 행정보다는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서 결정하여 예산 편성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다만 주민참여예산위원회는 자치단체의 예산도 한계가 있는 만큼 행정과 지속적 협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끝으로 미에현 니바라시 형태의 ‘지역사회 주도형’은 지역조성위원회에서 주민이 직접 예산을 편성·집행·결산하는 제도로 니바라시 내 14개 지역조성위원회가 교부금을 받아 14개 지역의 사업을 자체적으로 예산편성 및 집행하며 활동상황 및 사업실적을 시민에게 보고하는 형태다.
지역회의 주도형: 미에현 나바리시 주민참여예산제
이에 관해 조 연구위원은 “주민자치회가 주민총회를 거쳐 확정한 자치계획형 사업은 지역회의가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도록 해야 하고 행정은 교부금 등을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발제를 마쳤다.
발제 후 지정토론에서 먼저 전영평 대구대 명예교수는 “먼저 주민참여예산제는 주민자치, 즉 풀뿌리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제도라기보다는 시행정 과정에 시민을 참여시켜 수요자 중심 예산편성의 적실성, 관련성, 반응성, 책임성,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민참여 제도의 하나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한국의 경우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정부 예산편성 등 예산 과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여 지역에 필요한 예산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검토 조정하는 것으로서 행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주민들의 참여와 그에 따른 적절한 권한 부여로 참여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제도로 정의된다”고 짚었다.
주민참여예산제도에 있어서 주민자치회의 역할과 권한은?
이어 그는 “한국 주민참여예산제도는 관주도, 대표성, 전문성, 형식적 운영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는데 어떻게 해야 실질적인 운영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현행 주민참여예산제도 운영은 어떤 기여를 해 왔는가? 구체적 자료, 실증적 자료를 분석해 제시해야 할 때도 된 것 같다. 또 주민참여예산제도운영에 있어 주민자치회의 참여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주민자치회의 개입은 과연 기존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까? 주민자치중앙회는 이에 대한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는가? 주민참여예산제를 선도적으로 시행하는 국가의 사례는 어떤 장점과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는가? 행정구역의 규모가 커질수록 주민총회 방식의 예산편성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데 시군구 인구규모의 예산편성은 주민참여예산제와 같은 보완적 예산편성 방법이 차선이라고 볼 수 있는가?” 등 여러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두 번째 지정토론에 나선 류춘호 부산시의회 입법담당관은 “주민참여예산제도가 2005년 이후 긴 시간을 거쳐 진행되어 왔으나 시간의 길이는 만큼 제도적 성숙과 발전은 더딘 것으로 보인다”라며 운영 및 제도적 개선점을 제시했다.
먼저 ‘운영상 개선점’으로는 1)예산의 편성·운용 및 결산 과정에서 주민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2)재정민주주의 관점에서 주민 의한 재정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재정수요와 요구가 반영되어야 한다, 3)복잡화·다양화·전문화에 따른 관료 독점적 예산편성 독점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 4)광역자치단체 차원의 주민자치회 지원 제도(조례) 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제도적 개선점’으로 류춘호 입법담당관은 1)주민참여예산제도의 제도적 행위자로서 주민자치회의 권한 부여를 위한 입법화가 필요하다. 입법화에 따른 실효성 제고가 수반되어야 한다, 2)재정정보 수집과 공개는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서다. 주민참여예산을 통해 지방정부의 예산구조와 운영 체계에 이해와 관심을 갖는 성과가 있다. 지방정부의 예산·결산·회계정보를 공개가 필요하다, 3)주민조례청구, 주민소환, 주민소송 등과 함께 주민참여예산제도가 보다 체계적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지방예산 편성 등 예산과정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제도’이라 명칭하고 있지만 실제는 예산편성 단계에서 주민의 의견수렴 정도이고, 예의 심사와 운용, 결산 승인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실효성이 낮다, 4)주민참여예산제도의 정보의 투명성ㆍ신뢰성ㆍ정확성ㆍ환류성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세 번째 토론에 나선 이장욱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실시에 따라 자치단체 예산편성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지방재정의 투명성, 공정성 및 효율성을 제고하는 것, 그리고 기존의 관료적, 타성적 예산편성 과정에서 시민참여의 확대를 통해 예산낭비를 방지할 수 있는 사전적 통제기능 및 지역의 예산사업 우선순위에 따른 예산활용을 기대했다. 그러나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운영이 형식적인 참여단계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의 자치단체에서 주민참여예산제도를 공모사업 위주로 운영하고 있으며 공모사업 종류 또한 자치단체마다 대동소이하게 유사한 사업들이 제안되는 경향이 있다. 결과론적으로 우리나라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시행은 다양한 주민의견의 수렴 및 반영하기 위한 본론적인 시행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는 경향이 많다”고 지적했다.
계속해서 이장욱 연구위원은 “주민참여예산위원회 또는 주민참여예산제를 운영하는 주민자치회가 지역의 새로운 토착세력화하는 측면을 방지할 수 있도록 임기를 한정하고 정기감사 실시 및 공시 의무화 등이 필요하다. 주민참여예산제도가 지방재정법에 따라 실시되는데 매년 새로운 공모사업을 제안하고 발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제안사업이나 공모사업형태로 추진하는 사업제안을 숙성시키고 격년제로 시행하는 것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새로 사업들을 제안 받는 경우 충분한 숙의 검토과정을 거쳐 사업 추진의 기대효과가 명확히 나타날 수 있도록 제안서 내용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사진=문효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