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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한국이 하고 있는 왜곡은 무엇인가[연구세미나98-인트로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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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한국이 하고 있는 왜곡은 무엇인가[연구세미나98-인트로강의]
  • 문효근 기자
  • 승인 2024.08.01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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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8차 제98회 주민자치 연구 세미나 전상직 한국주민자치학회장 인트로 강의

주민이라고 써 놓으면 주민이라고 읽어야하고, 자치라고 써 놓으면 자치라고 읽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주민이라고 써 놓고 관료라 읽고, 자치라 써 놓고 행정이라고 읽고 있는 어이없는 현실이다. 문해력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대는 국가가 주민을 직접 지배했고 중세는 봉건 영주들이 주민을 지배했다. 고대에 국가가 모든 것을 관정하던 것을 국가자치, 중세 영주들이 지배하던 것을 단체자치, 근대에 주민들이 직접 자치하는 것을 주민자치라고 봤을 때 일본의 자치는 단체자치와 주민자치의 전통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또한, 일본과 영국은 단체자치와 주민자치를 철저히 분리하고 있다. 정내회와 패리쉬가 그 예다. 근린을 주민들에게 내 준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이런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과 사()가 있을 때 사 없이 공만 있으면 멸사봉공(滅私奉公)이고 공은 없고 사만 있다면 멸공봉사(滅公奉私). 사와 공이 서로 충족하기 위해서는 활사((), 즉 개인의 사회화가 되어야 하고 개공(開改), 즉 사회의 인간화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주제다. 공공영역은 국가공이 시장영역은 시장공이 움직이고 있다. 사회공은 민주제에 의해 이뤄지고, 특히 직접제와 전원제에 의해 이뤄진다. 여기에 효과성까지 추구해야 하는데, 이것은 주민들을 득도 수준으로 올려 놔야한다. 과연 가능한 것일지 어려운 숙제와 같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생태성이다. 목적도 생태적이고 실천 방법도 생태적이고 수용하는 것도 생태적이며 규정하는 것도 생태적이다.

주민자치를 간략하게 들여다보면 주민자치센터는 주민자치기능, 문화여가기능, 지역복지기능, 주민편익기능, 시민교육기능, 사회진흥기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을 제대로 실천하는 주민자치센터는 단 한 군데도 없다. 미사여구로 정책 결정자들을 속인 것과 같다. 오히려 이런 미사여구가 주민자치를 호도한 것이다.

주민자치위원회를 설치해 놓고 아무런 권한 없이 심의하게 끔만 묶어 놓았다. 심의라는 단어를 놓고 보면 누군가 만들어 놓은 것을 전문적인 지식으로 심의하여 실천하게끔 유도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밑도 끝도 없는 프로그램 심의 기능만 덜렁 맡겨 놓은 것이다. 행정안전부가 심의라는 단어 하나로 주민자치를 완전히 무력화 시킨 것이다. 정책문해의 정도가 심각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봉사정신이 투철하고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을 주민자치위원으로 위촉한다고 하는데, 지금 주민자치위원들은 그런 역량이 부재되어 있다. 오히려 읍면동장 보조 역할에 그치고 있다. 위촉 이전의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 주민자치 정책 기획력에 있어 심각한 하자가 있었다고 보인다. 주민자치할 여유와 의지와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모두 부재되어 있다. 부족한 능력은 교육과 지원으로 채워 줄 수 있지만 여유와 의지, 동기는 도와줄 수 없는 차원의 것이다.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 제20조 주민자치회 설치에 관해 풀뿌리자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해 읍면동에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를 둘 수 있다는 조항을 행정안전부는 주민자치회 표준조례에서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이란 문구를 삭제하였다.

주민자치회에 주민이 없어진 것이다. 대신 위원으로 채워 넣었다. 주민자치회의 회칙 제정권이 박탈되었고 대신 시군구 조례에 묶여 관치화된 것이다. 회장 선출권도 박탈되고 공개추첨으로 무력화시켰다. 재정권 역시 빼앗아 시군구 예산에 의지하게끔 예속화시켜 버렸다. 결국 지금의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아닌 소수의 위원만으로 구성된 심각하게 기형적인 구조다.

행정안전부의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표준조례 21시장(또는 군수·구청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관련 법인 또는 단체 등으로 하여금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을 지원하게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지원이 아니라 아예 위탁을 맡겨 버리는 조항이다. 운영에 관하여 자문 정도를 받는 것은 모르지만 설치 및 운영 전 과정을 주민의 동의도 없이 시민단체에 위탁시켜 버린 빌미가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시민단체는 주민을 배제하고 주민자치회를 설치 주도했고 편향적 활동으로 교육을 주도했으며 주민자치회 자체를 장악해 운영을 주도해 버렸다.

시민단체가 주민자치에 제대로 숟가락을 얹었다. 문재인 정부와 고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시작된 시민단체에 대한 주민자치 위탁이 시민운동가와 권력형 시민단체의 규모만 키운 것이다. 행정과 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시민단체, 관변단체를 중간지원조직이라는 미명 아래 주민자치회를 지배하고 주민자치회의 정당한 권리를 말살시켰다. 행정에게 권한을 위탁 받은 중간지원조직에 의해 주민은 흡사 식민지에 처한 현실이다.

전격적으로 폐지된 서울시 마을공동체사업이 대표적 증거다.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마을자치지원센터-동자치지원관으로 이어지는 중간지원조직을 내세워 주민자치 경험이 전무한 시민단체에 정책부터 행정까지 포괄적으로 위탁한 것은 자치단체의 무책임이자 지방의회의 무지를 드러내는 극치다. 주민 동의 없이 모든 것을 민간에 위탁해 버리는 작태는 조선시대에 이미 실패했던 주민자치인 수령향약, 양반향약과 다를 게 없다.

 

주민자치위원회는 국가가 주도했지만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주도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의미 없는 시범실시 주민자치회를 박근혜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자치단체가 주도했고, 문재인 정부는 시민단체가 주도했다. 헛발질 했고 실패했다. 실패에도 배울 게 있으면 좋은데 배울 것도 없이 철저히 실패해 버렸다. 의미 있는 주민자치회 시범실시를 해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는 것 같다.

 

이런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정책을 확실히 독해하는 제대로 된 정책문해력을 키울 수 있는지 오늘 세미나에서 고견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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