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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와 프로슈밍(Prosuming) 그리고 부(wealth)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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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와 프로슈밍(Prosuming) 그리고 부(wealth) 창출
  • 전영평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24.08.2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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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주민자치중앙회와 한국주민자치학회는 주민자치를 왜 해야 하는가?’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시대적 고민을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이 한 단체이다. 주민자치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관치주의자와 주민자치 냉소주의자들에게 주민자치의 필요성, 정당성, 방법론, 자치 이슈를 제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 아니다. 필자 또한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하여 발표, 토론, 칼럼을 통하여 여러 차례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이번 기회에는 프로슈밍(prosuming)이라는 참신한 (어쩌면 인류 사회생활 초기부터 있었던 생산과 소비, 협동행위 속에 존재한) 생각과 방법을 응용하여 주민자치의 필요성과 주민자치에 대한 기여 가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프로슈밍이라는 보이지 않는 부의 창출방식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Revolutionary Wealth: How It Will Be Created and How It Will Change Our Lives)>(2007) 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wealth)보이는 부 (visible wealth)’보이지 않는 부(invisible wealth)’ 모두를 포함해야 한다고 통찰하였다. 이는 각양각색의 행위자에게 새롭고도 수많은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가정, 집단, 사회의 새로운 역할과 이를 통한 전 세계적 문제(빈곤, 기후변화, 안전, 환경, 자연, 재해)에 대한 참신한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는 인식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이 중에서 특히 필자가 주목하는 바는 프로슈밍이라는 부(안 보이는 부 invisible wealth) 창출 방식에 관한 것이다.

앨빈 토플러 부의 미래 번역본 표지. 사진=청림출판
앨빈 토플러 부의 미래 번역본 표지. 사진=청림출판

 

프로슈밍(prosuming: production+consuming의 합성어)이란 생산과 소비가 거의 동시에 일어나면서 부를 창출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개인, 집단, 조직, 국가 등 모든 사회구성체 차원에서 일어날 수 있으며 프로슈밍을 통해 창출되는 부는 사회 전반의 부 창출의 거의 절반 수준(국가에 따라서는 절반 이상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프로슈밍의 다양한 예를 제시해 보자. 예컨대 개인 차원에서는 DIY(do-it-yourself)를 통한 부의 창출이 혁신적 프로슈밍이 된다. 가정에서 스스로 경작한 농축산물 및 각종 자급 원료를 생산하여 음식과 가구, 예술작품 등을 만들어 가정에 소비하고 일부는 교환 및 판매를 하게 된다면 이는 프로슈밍에 의한 부의 창출이 된다. 공동체마을의 경우에도 공유자원(인적, 물적, 자연, 문명 유산 자원)을 활용하여 공동 생산한 재화/서비스를 공동 소비하는 과정도 부의 창출에 이바지한다.

기업의 경우 수익 창출 활동을 통한 회계상 화폐단위의 부 창출 이외에도 협동적, 사회적 기여 활동과 ESG 활동을 통해 비화폐적 부를 창출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국가 단위의 경우에도 (GDP, 경상수지, 무역수지 등 화폐적 부 창출에만 집착하지 않고) 국가적 프로슈밍(예컨대 NGO의 국가적 봉사활동, 국민 통합적 행사)이 가능하다.

필자가 방문하였던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일 인당 GDP(국내총생산)는 화폐표시로는 500달러에 불과하였지만 실제로 그들의 삶은 500달러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먹고는 살만한 삶이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주로 농업에 종사하는 상황에서 기본 식량(탄수화물과 육류) 정도는 조달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청년들은 대부분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최소 화폐가치로 2000 달러 이상의 소득이 가능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각자 가정에서 프로슈밍을 통하여 농작물, 연탄, 장작, 옥수수, 과일, 술 등을 제조하여 소비하고 남은 물자는 물물교환이나 시장을 통하여 판매함으로써 통계에는 안 잡히는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이는 토플러의 지적처럼 안 보이는 비화폐적 부 창출보이는 화폐적 부 창출을 훨씬 능가하는 사례임을 증명한다.

 

측정 어려운 비화폐적 부 창출의 가치

대부분의 중진국, 심지어는 선진국에서도 프로슈밍에 의해 창출되는 보이지 않는 부의 창출은 실로 엄청난 수준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국의 사례를 들자면 1970년대 추진한 새마을운동은 국가적 프로슈밍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새마을운동은 마을 단위 주민자치와 국가 정책의 결합을 통해 혁신적으로 재화 및 서비스 공동생산과 공동 소비를 가능케 하였기 때문이다. 국가 간 수준에서도 국제 NGO 자원봉사, 재난구조, 의료교육인권 봉사, 지구환경 보호 등의 활동에서 프로슈밍 활동이 얼마든지 발견되고 있다.

위에 열거한 사례는 분명히 혁명적 부 창출 활동에 해당한다. 이런 활동은 화폐단위로 표시되지 않기에 그 가치에 대한 생생한 인식을 자극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크다고 하겠다.

경제학이나 국가통계에서는 경제활동을 통해 창출된 생산-소비 중심으로 화폐적 가치로 표시된 통계지수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것에는 큰 오류가 있다. 적어도 한 국가의 부(Wealth)의 전체 규모를 제대로 측정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말이다.

대부분 국가는 사회 곳곳에서 생산-소비되는 비화폐적 부 창출의 가치는 거의 측정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필자가 다녀온 스리랑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의 화폐적 소득수준은 4000 달러 수준이고 현재 국가부도 (IMF 관리)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실제 필자가 방문한 마을에서는 자급자족 경제가 그런대로 잘 돌아가고 있었는데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시장에 내다 파는 농축산물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의 부 측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앨빈 토플러의 아래 언급은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부의 미래를 예측하려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뿐만이 아니라 무보수로 행하는 프로슈머(prosumer, 생산소비자)활동도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가 하루하루 무보수 산출물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내고 있는지를 아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생산적 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프로슈머경제를 논의하지 않고서는 화폐경제의 미래를 이해할 수도 예견할 수도 없다. 프로슈머경제와 화폐경제는 불가분의 관계로서 이들이 모여서 부 창출 시스템을 만든다(앨빈 토플러, 부의 미래: 김중웅 옮김).

 

주민자치는 어떻게 독자적이고 고유한 프로슈밍의 길을 열어나갈 수 있는가

프로슈밍의 가치는 프로슈밍에 과정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슈밍의 외연적 가치 창출에서 더욱 빛날 수 있다. 예컨대 마을 단위 프로슈밍은 생산-소비 과정에서의 효용과 인건비로 표시할 수 있는 부를 창출하는 것이지만 프로슈밍의 결과가 정신 문명적 가치로 이어질 경우(예컨대 협동의 중요성 인식, 협동의 제도화, 협동과정의 질서와 신용, 참여감과 행복감의 증가) 이는 혁명적으로 마을의 부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생산과 소비의 효용, 마을 사회자본 형성. 자존과 명예, 성취와 확산 등 인간과 집단의 생존과 품위유지에 엄청나게 이바지할 것임이 분명하다.

여기서 우리는 프로슈밍의 가치와 보편성을 한국의 주민자치 시행의 강력한 논거(rationale)로 채택할 필요가 있으며 자발적 주민자치를 방해하는 요소를 인지하고 이를 시정할 방안을 모색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먼저 주민자치가 어떻게 독자적이고 고유한 프로슈밍의 길을 열어나갈 수 있는가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전상직(2024 주민자치 연구세미나 발표 자료)이 제시한 다음과 같은 도식에서 나타나는 주민 자치 영역의 고유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아래 도표를 보면 주민자치의 고유영역은 국가, 시장, 사회, NGO(non government organization), NPO(non profit organization), NFO(non family organization)에 해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상직의 구분은 상당한 통찰력을 토대로 하여 주민자치 활동 고유영역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런 통찰은 선진제국의 주민자치 관행이 잘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주민자치 역사, 사상, 철학, 관행이 매우 취약한데다가 현재 주민자치 제도와 관행마저도 관치적 통제, 정치적 이용, 주민참여 저하로 인하여 무늬만 주민자치이고 실제는 내용이 매우 부실한 형식적 주민자치가 되었다.

이렇게 부실한 주민자치를 보다 활력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주민자치를 통한 프로슈밍의 순기능과 효과에 대한 인식, 교육, 홍보를 통해 주민 스스로가 동네 주민자치를 통한 주민의 권익과 수혜 그리고 사회적 기여를 확실히 인식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주민자치를 통한 프로슈밍의 순기능과 부 축적 가능성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

 

주민자치 통한 프로슈밍의 순기능과 부 축적 가능성

먼저 주민자치 프로슈밍은 협동적 프로슈밍이기에 해당 마을의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생산과 소비에 이바지한다. 즉 협동적 프로슈밍은 참여, 신뢰, 질서 형성 등과 같은 비가시적 부 (wealth)의 창출에 기여하며 이는 가시적 부 창출의 정신적 인프라로서 기능하게 된다

둘째 현실적 차원에서도 협동적 프로슈밍은 마을의 안전, 위험 위기 대처, 교육지원, 복지향상, 가치 보호 활동을 촉진하여 가시적, 비가시적 부 창출에 이바지하게 된다.

셋째 협동적 프로슈밍은 마을의 공동자원(공동목장, 농장, 어장 등)을 활용하여 가시적 부의 생산과 소비, 비가시적 부의 창출에 기여하게 된다.

셋째 협동적 프로슈밍은 마을 내부의 유무형 문화유산(문화재, 건축물, 축제, 전통)을 보호·관리·전시·활용하는 과정을 통해 가시적 부(유산의 가치 증가)는 물론 비가시적 부(마을의 프라이드, 주민의 보람, 정신적 가치의 계승)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

넷째 협동적 프로슈밍 활동은 그것이 없었다면 투자해야 할 엄청난 행정비용을 절감하게 함으로써 납세자의 부담을 줄여주고 자립적 활동의 정신적 가치를 고양할 수 있다. 예컨대, 마을의 청소, 취약지역 순찰, 주차장 관리, 게시판 관리, 노약자 보호 등과 같은 분야에서 가시적, 비가시적 부 창출의 원동력이 된다.

다섯째 협동적 프로슈밍은 주민자치를 기반으로 한 것이기에 자율적 풀뿌리민주주의를 성숙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대의정치 실패와 하향식 통제 행정을 제어하여 마을 단위의 비가시적 부 창출에 기여하게 된다.

여섯째 협동적 프로슈밍은 개별 마을 단위를 중심으로 한 주민자치의 한 형식이기에 각 마을의 외부적 특성과 내부적 특성, 물리적 특성과 인적 특성에 따른 독특한 문화적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는 큰 구도에서 보면 이는 지역, 국가, 세계에 걸쳐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비가시적 부의 창출에도 기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마을의 협동적 프로슈밍 활동은 비록 가장 작은 단위(마을)에서의 자율적 협동과정이라 할지라도 마을 주민의 프라이드와 그에 따른 품격 있는 자치가 될 경우(예컨대 뉴잉글랜드 엘모어 타운의 주민자치의 경우처럼, 마을의 이슈에서 국가적 이슈, 지구적 이슈에 대한 결의 등)에는 그것이 파생하는 가치와 그것의 모방을 통해 기여할 수 있는 부는 글로벌 정신적 부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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